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은 커피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다. 2000년 모로코 몬테카를로에서 12개국의 바리스타가 참여해 1회 대회가 열렸고, 2003년에는 15분 이내에 에스프레소와 밀크 음료, 창작 음료를 각각 4잔씩 제조하는 지금의 경연 방식을 확정했다. “경쟁을 통해 스페셜티 커피를 기반으로 한 에스프레소의 추출 및 서빙에 관한 바리스타의 지식과 전문성을 키운다”라는 취지에 맞게 이 대회는 20여 년 가까이 산업의 표준을 만들고 혁신을 일으켜왔다.
스페셜티 커피는 전문성과 추적 가능성을 바탕으로 커피가 가진 본연의 가치, 맛과 향을 최대한 끌어낸다. 싱글 오리진 원두, 커피 추출 수, 그라인더, 가공 방식 등 ‘전문성’에 기반한 기술적인 혁신에 집중해 왔던 초창기 대회 흐름은, 최근 들어 한 잔의 커피를 완성하는 과정의 ‘추적 가능성’에 조금 더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2023년 대회에 브라질 국가대표 참가해 챔피언이 된 엄보람은 시연을 통해 농부와 로스터, 엔지니어와 믹솔로지스트 등 한 잔의 완벽한 커피를 만드는데 기여한 이들을 드림팀으로 소개했다. 2024년 부산에서 열린 챔피언십 대회 결승에 올라 시연을 펼쳤던 우리나라 국가대표 임정환 바리스타 또한 ‘픽셀’을 주제로, 시장의 확장을 위해선 커피를 만드는데 기여한 이들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페셜티 커피 시대에 이르러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했던 커피 제조 과정에 과학과 기술의 힘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계량화된, 측정 가능한 레시피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양질의 커피를 제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스페셜티 커피가 새로운 물결을 만든 이래 한 잔의 커피는 무수한 발전을 이룩해 지금의 깊고 풍성한 맛을 완성했다. 하지만 여전히 숫자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경험적인 요소와 커피 생산에 관계하는 사람들의 교류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때로는 그것이 커피가 가진 한계를 무너뜨리고 더 넓고 깊은 맛의 세계를 펼쳐나가기도 한다.
임정환 바리스타에게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십 무대는 부단히 연마해 온 테크닉을 선보이는 무대기도 했지만, 커피 업계에 종사하며 맺어온 인연들에 보답하고 그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학교에 가는 일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일찍이 커피 업계에 발을 들였는데, 그 순간부터 커피는 인생의 모든 관계에 관여했다. 군대에서도 바리스타로 활약해 바리스타 병사로 이름을 알리기도 할 정도였다. 커피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탐구하는 스페셜티 커피 세계를 맛본 후에는, 그 가치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 관계를 더 두텁고 넓게 만드는 일에 몰입했다. 김남균 코치를 비롯해 김홍우, 박병철, 박혜리 바리스타와 팀을 이뤄 바리스타 대회에 출전한 것은 그 관계 확장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에게는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만큼, 완성도 높은 커피 한 잔을 더 많은 대중에게 선보이는 일도 중요했다. 그리하여 대회를 함께했던 친구들과 부산 구도심에 ‘에어리 커피’를 열게 됐다. 카페는 ‘팀 에어리’가 커피를 둘러싼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커피가 가진 본연의 선명한 맛을 강조하기 위해 공간은 비워두는 것에 집중했다. 마치 대회장을 연상케 하는 1층에서 소비자들은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팀 에어리가 준비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바의 맞은편에는 높은 의자와 테이블이 마주하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일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약간의 불편함을 더한 것이다. 심플한 인테리어지만, 소리가 지나치게 울리지 않도록 벽과 천장에 방음 설비를 더하는 세심함도 놓치지 않았다.
매장 1층과 2층에 각각 걸려있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 ‘무제’와 ‘다이얼로그’는 관계의 중요성을 통해 커피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려는 에어리 커피의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이우환은 돌과 강철판을 소재로 관계와 주체, 자연과 문명 그리고 그것들의 대화와 교통을 표현해 왔다. 그가 만든 모든 조각에는 관계항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일생 관계 맺는 주체에 몰입해 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직접 공수해 온 돌을 일일이 갈아서 물감을 만들고, 특수 제작한 붓으로 칠하고 말리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해 만들어지는 회화 작품 또한 관계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그는 사물과 공간, 사람이 주고받으며 만드는 관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카페 에어리는 공간과 커피, 사람이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는 가변의 영역이다. 임정환과 팀 에어리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가장 최신의, 최선의 방법으로 커피를 제공하는 한편, 커피 산지를 비롯한 가치사슬의 모든 관계와 접촉하며 그 가변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여백을 두고 관계를 드러내니 비어 있던 공간에 커피 향기가 가득 퍼진다. 보다 선명해진 관계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팀 에어리는 분주하게 오늘의 커피와 관계를 채워나간다.
조원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