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운동회 하는 모습을 담벼락 너머로 구경했어요. 돗자리를 펴고 가족끼리 앉아 도시락을 먹던 어린 시절 운동회가 그리워지더라고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A씨가 지난달 열린 자녀의 운동회를 지켜본 소감이다. 운동회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변화하고 있다. 전교생이 모여 청백전을 하는 대신 학년별로 경기를 하고, 도시락 대신 학교 급식을 먹고 귀가한다. 온 가족이 총출동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학부모 참여 행사가 줄어드는 추세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워킹맘’인 직장인 B씨는 최근 학교에 조심스레 민원을 제기했다. 운동회 때 학부모 참여를 허용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B씨는 “녹색어머니회, 학교 참관수업에 운동회까지 직장에서 자녀돌봄 휴가를 쓰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부모 참여는 자율이라지만 부모가 가지 않았을 때 아이가 느끼는 실망감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 이런 건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운동회 형태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가족이 참여하는 운동회는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교육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 평일 학교 참여 행사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과밀 학급 문제에 시달리는 신도시 학교는 운동장과 체육관 공간이 부족해 전교생 운동회를 열기 어려운 사례도 있다. 경기도 신도시에 거주하는 학부모 C씨는 “아이 운동회에 구경하러 가고 싶었는데 오히려 학교 측으로부터 공사 등으로 공간이 부족해 참관이 불가하다는 알림을 받았다”고 했다. 자연스레 가족끼리 모여 도시락을 먹는 풍경도 사라지고 있다. 전교생이 모여 대규모 행사를 여는 대신 학년별로 반 대항전을 진행하고 급식을 먹은 뒤 하교한다.
대규모 운동회가 사라진 데는 코로나19도 영향을 미쳤다. 2023년 서울교육청은 코로나19로 중단된 체육 행사를 되살리고자 1300여 개 초·중·고등학교에 학교당 500만원의 체육 행사 운영비를 지원했다. 학부모와 인근 주민들까지 참여하는 ‘마을 잔치’와 같은 운동회를 되살리자는 취지였다. 운동회 진행 방식도 달라졌다. 교사의 준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문 레크리에이션 업체를 고용하는 사례가 많다. 초등학교 교사 D씨는 “학생 간 경쟁이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승리팀과 패배팀을 나누기보다 동점으로 경기를 마무리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