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로 부활한 한국적 상상력…시야 더 넓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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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고니아'의 한 장면. 포커스 피처스/ 프레먼틀, CJ ENM

영화 '부고니아'의 한 장면. 포커스 피처스/ 프레먼틀, CJ ENM

“‘지구를 지켜라!’는 봉준호와 박찬욱이 등장한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 나온 상상력입니다. 이걸 리메이크한 ‘부고니아’는 그 상상력이 지금 세계 영화시장에서 유효하다는 걸 보여준다고 봐요.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가 ‘어쩔수가없다’와 함께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받은 건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한창인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북부 리도섬의 엑셀시어 호텔에서 만난 고경범 CJ ENM 글로벌영화사업 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베니스 영화제가 처음 시작한 공간이자 영화제를 찾은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이 모여 교류하는 이 호텔에서도 가장 분주했다. CJ ENM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 ‘어쩔수가없다’와 ‘부고니아’가 경쟁부문에 오르는 성과를 냈기 때문. 이미경 CJ 부회장과 함께 ‘부고니아’의 공동 제작자에 이름을 올린 그는 평단의 반응을 살피면서 영화의 글로벌 행보를 챙겼다.

‘부고니아’는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산업의 활로 중 하나다. 22년 전 흥행에 참패한 한국영화를 할리우드에서 새로 리메이크했다는 점에서다. 투자경색으로 신작 제작이 멈춘 충무로에 한국영화 지식재산권(IP)으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고 본부장은 “나라별 영화 장벽이 무너진 시대”라며 “오랜 세월 쌓은 한국영화의 잠재력을 새롭게 발휘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경범 CJ ENM 글로벌 영화사업 본부장. /CJ ENM 제공

고경범 CJ ENM 글로벌 영화사업 본부장. /CJ ENM 제공

‘부고니아’는 CJ ENM의 글로벌 영화 프로젝트다. ‘미드소마’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아리 애스터가 ‘지구를 지켜라!’의 ‘빅팬’으로 알려진 사실을 확인한 CJ ENM이 곧장 영화 제작을 제안해 리메이크가 성사됐다. 고 본부장은 “2010년대 할리우드는 마블 블록버스터나 엣지 있는 저예산 작품이 대세가 되며 ‘미드버짓(중급예산)’ 영화가 사라졌다”면서 “한국이 쌓은 스토리를 보여줄 기회가 무르익었다고 봤다”고 말했다. ‘기생충’으로 K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소구력을 갖게 된 시점에서 독창적인 스토리를 글로벌 감성에 맞게 바꾸면 할리우드의 빈 허리 틈새를 공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영화는 드라마 ‘석세션’으로 프라임타임 에미상을 받으며 주가를 올리던 윌 트레이시가 각본을 맡고,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할리우드 정상급 배우 엠마 스톤을 앞세워 연출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로 꼽히는 유니버설 픽처스 산하의 포커스 피처스에게 배급을 맡기며 마케팅도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고 본부장은 “영화는 초기 기획에서 승부가 갈리는데, CJ ENM이 리스크를 안고 비용을 투입해 이끌었다”면서 “이후 개발 단계에서도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며 작품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고 본부장은 이날 한국 영화IP 리메이크부터 신진 영화감독 발굴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글로벌 진출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그간 한국시장만 보고 시나리오를 쓰는 상상력이 작동했다면, 앞으로는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만하긴 이르지만 CJ가 지난 30년 간 축적해온 콘텐츠가 마중물이 돼 하나씩 물꼬가 트이는 것 같다”며 “인도네시아 조코 안와르 감독과 제작한 영화도 곧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고, 신인 감독들의 작품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베네치아=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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