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거리의 정치, 스펙타클의 백년 [청계천 옆 사진관]

2 hours ago 1

백년사진 No.112

●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100년 전 운동

‘백년사진’은 100년 전 신문에 실린 사진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연재입니다. 이번 주 100년 전 신문에는 유난히 사진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유독 눈에 띄는 장면이 없었습니다.
청량리 들판에서 밭을 일구는 황소 달구지와 농부, 창경궁으로 추정되는 연못가의 오리떼, 장충단 공원의 푸른 잔디를 바라보는 소녀들, 그리고 다양한 스포츠 행사 사진들. 그러나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특별히 소개할 만한 인상적인 비주얼은 아니었습니다. 독자들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장면에는 쉽게 놀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100년 전, 당시 사진기자들이 그 장면들을 찍고, 신문 지면에 실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1925년 5월 8일자 동아일보 2면에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유학생 운동회 사진이 실렸습니다.

재동경 유학생 운동회. 1925년 5월 8일자 동아일보 2면. 사진 옆에 곡선을 넣어 시선을 집중시키는 편집을 했네요.

재동경 유학생 운동회. 1925년 5월 8일자 동아일보 2면. 사진 옆에 곡선을 넣어 시선을 집중시키는 편집을 했네요.

이틀 뒤인 5월 10일자에는 전국 축구대회 개막 소식과 함께 운동장의 전경을 담은 사진이 게재되었습니다.오늘날 같으면 골을 넣는 순간이나 환호하는 장면이 실렸을 법한데, 당시에는 관중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넓은 그라운드가 대표 이미지였습니다.

축구 대회의 장관. 1925년 5월 10일자 동아일보  3면.

축구 대회의 장관. 1925년 5월 10일자 동아일보 3면.
사진 왼쪽 아래, 둥근 물체는 구경 나온 아가씨의 양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 관중 사이에 끼지 않고 좀 더 거리를 둔 게 사진의 원근감을 주는 요소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넓은 앵글, 요즘 스마트폰의 파노라마 촬영 기능을 연상시키는 구도는 새삼 놀랍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사진 촬영과 보여주기의 방식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변화하는 스펙타클의 풍경100년 전 5월, 다양한 스포츠 행사가 잇달아 열렸습니다. 시민들과 신문 독자들에게는 그것이 ‘대단한 볼거리’였던 듯합니다.

5월 5일자 2면에는 “오는 6월 초순, 제12회 조선여자정구대회가 열릴 예정이며 곧 상세한 계획을 알릴 것”이라는 안내기사가 실렸습니다. 서울, 개성, 도쿄 등지에서 펼쳐진 승부와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청춘들의 모습은 하나의 스펙타클이었고, 당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문 지면에 꼭 한 장씩, 그 풍경이 담겼던 것이겠죠.

스펙타클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붙잡는 장치입니다. 사회적 감정이 움직이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누가 주최하고, 누가 조명되며, 무엇이 강조되는가에 따라 그 시대의 의도와 욕망이 드러납니다.

청년회가 주최하고 언론이 주목한 일련의 체육행사는 단순한 운동경기를 넘어서, 그 시대를 사는 이들의 몸짓과 감정, 의지를 담은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식민지의 억압 속에서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누워 있지 않겠다는 조용한 저항이었을 것입니다. “몸이라도 건강하자”는 다짐,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는 외침이었겠지요.

● 오늘의 스펙타클, 그 양면성

지금은 볼거리의 종류도 많고, 기술은 더 화려해졌습니다. 일상 곳곳이 스펙타클이고 놀라운 장면은 넘쳐납니다. 그리고 이 스펙타클은 곧 ‘자본’과 연결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영향력을 키우는 것. 에너지음료 브랜드가 익스트림 스포츠 이벤트를 여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시대가 달라지며 스펙타클도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여전히 그것은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붙잡고, 붙잡은 마음을 통해 무언가를 이룹니다.

100년 전 청년회가 건강과 자긍심을 원했다면, 지금의 이벤트 주최자들은 돈과 대중의 지지를 원합니다.

정치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즘의 정치 무대는 거대한 전광판, 수천 대의 스마트폰 카메라, 각종 이미지 전략과 퍼포먼스로 가득합니다. 후보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정치인의 얼굴과 연설은 하나의 콘텐츠가 됩니다.

유권자들은 마치 100년 전 운동회 관중처럼 열광하지만, 그 열광이 항상 주최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을 보면 그 단면이 드러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긴 했지만 오히려 ‘희화화’되는 최악의 효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눈은 붙잡았으나 마음은 전혀 못 잡고 있습니다. 그게 원했던 목표였다면 성공입니다.

● 다시, 스펙타클의 본질을 묻다

100년 전, 축구장의 한 컷은 ‘살아 있음’의 증거였고, 지금은 그것이 이미지 정치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스펙타클은 시대를 관통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마주한 이 스펙타클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누구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가를 물어야 할 시점입니다.

‘볼거리’가 곧 ‘권력’이 되는 시대, 우리는 어떤 장면을 응시하고, 어떤 장면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까요? 오늘은 100년 전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온 국민의 눈을 집중시켰던 스포츠 이벤트 사진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좋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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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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