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열기로 달아오른 5월 마지막주 ‘이번주인공’
제21대 대통령을 뽑는 사전투표가 지난 29일 시작됐습니다. 첫날에만 19.58%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는데요. 높은 관심만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연예인들의 ‘복장’ 논란입니다. 최고 인기 걸그룹 중 하나인 에스파(aespa)의 멤버 카리나는 지난 2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붉은색 점퍼를 입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해당 점퍼에는 붉은색 뿐만 아니라 숫자 2가 크게 박혀 있었습니다. 때문에 카리나가 특정 대선 후보 지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해당 사진을 올린 시간이 하필 3차 TV 토론이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라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카리나는 문제를 인지한 즉시 해당 사진을 삭제했습니다. 그러나 각 진영에선 카리나를 ‘보수 여신’으로 응원 혹은 조롱하며 논란을 이어가는 모양새입니다. 이에 카리나는 28일 팬 소통 플랫폼 버블에서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앞으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행동하겠다. 걱정 끼쳐서 죄송하다”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유명 래퍼 빈지노 역시 복장 때문에 곤욕을 치렀습니다. 빈지노는 사전투표가 시작된 29일 빨간색 바지와 모자를 착용한 채 아들을 돌보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정치색 논란이 불거지자 빈지노는 그날 밤 사과문을 올려 “사전투표 기간 중이라는 타이밍에서 오해를 살 수 있었던 점, 충분히 조심하지 못했던 점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는 표현 하나하나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논란에 투표 인증샷을 남긴 다른 연예인들도 ‘정치색 논란’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의 제이홉, 배우 김고은 등은 투표 인증샷을 올렸지만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었거나 아예 본인이 등장하지 않는 사진을 올렸습니다. 반면 대표적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로 알려진 가수 이승환은 파란 옷과 모자를 쓴 채 투표 인증샷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또 쓰러진 KIA 김도영…SNS까지 폐쇄하며 ‘속앓이’
넘치는 열정이 문제였을까요. 지난해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한 김도영(KIA 타이거즈·21)이 또 부상에 발목 잡혔습니다. 김도영은 지난 2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서 5회말 도루에 성공한 뒤 교체됐습니다. 인근 병원으로 이동해 정밀 검진을 받은 김도영은 오른쪽 햄스트링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도영의 부상은 이번 시즌에만 두 번째입니다. 그는 모든 야구팬의 기대와 관심이 모아졌던 시즌 개막전에서 왼쪽 햄스프링에 부상을 입고 한달 동안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지난달 복귀해 간판타자로서 침체된 타선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최근엔 4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내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번 부상은 이범호 KIA 감독의 ‘도루 자제령’이 떨어진 이후에 발생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앞서 이범호 감독은 김도영의 부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도루를 자제하고 타격에 집중하라”고 지시한 바 있는데요. 승부욕이 강한 김도영이 자신의 강점 중 하나인 빠른 발을 활용하기 위해 도루를 감행했다가 결국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로 선수 본인도 크게 상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던 김도영이지만, 이번엔 SNS를 폐쇄한 채 침묵모드에 들어갔습니다. 햄스트링 손상 2단계(그레이드 2) 진단을 받은 김도영은 최소 한달은 재활에 매달려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팬들은 김도영이 하루빨리 부상을 털고 복귀하기를 바란다며 응원을 보냈습니다.
美 대표 지한파 랭글 전 의원 별세…6·25 참전하기도
6·25 참전용사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지한파 정치인인 찰스 랭글 전 하원의원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4세. 뉴욕 맨하튼의 할렘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0년 뉴욕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46년간 의사당을 지킨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인 정치인입니다
고인은 6·25전쟁 초기 미 2보병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당시 중공군의 공격에 부상을 입기도 했는데요. 이때의 공훈으로 퍼플하트·동성 무공훈장을 받았고, 2007년엔 한국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6·25전쟁의 의미를 이어가려는 노력도 꾸준히 했습니다. 지난 1977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하자 이에 강력히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2014년),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을 발의하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민주당 소속임에도 한미 FTA 체결에 앞장서는 등 한미동맹 강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고인은 평소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는데요. 아쉽게도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