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어떤 기준으로 성과급을 책정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니 직원들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단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전자 6년차 현직 개발자는 이달 초 비즈니스 네트워크 서비스 리멤버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반도체처럼 숙련 인력이 핵심인 산업에서 보상 체계에 대한 불신은 결국 인재 유출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 같이 비판했다.
삼성전자 내부 직원들 불만은 성과급 논란의 출발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보상 기준에 관한 문제제기 수준을 넘어섰다는 비판이 거세다. 노조가 "성과급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던 주장을 '영업이익 중 일정 비율 고정 배분'을 골자로 한 제도화 요구로 확대하면서다.
삼성전자 노사, 예견된 갈등…'높은 보상' 요구 커져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가 근로에 대한 보상 문제를 경영성과 배분 방식과 같은 경영권 개입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돌발 변수가 아니다. 반도체 업종에선 이미 이번 사태를 예견할 수 있는 신호가 울렸다. 현 최대 노조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 이전 교섭대표노조를 맡던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과 회사가 합의한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부결됐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제 삼성전자 노사는 2024년 11월 2023·2024년도 임금협약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전삼노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됐다. 당시 잠정안엔 임금 5.1% 인상, 임직원몰 복지포인트 200만원 지급 등이 담겼지만 조합원 눈높이엔 미치지 못했다.
노조 집행부가 끌어낸 잠정합의안조차 조합원 투표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건 삼성전자 내부에서 보상을 요구하는 수위가 높아졌단 의미다. 노조 내부 의사결정이 집행부 중심에서 조합원 여론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노동계에서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MZ세대 존재감이 확대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탈자 흡수한 초기업노조…조합원 여론에 더 민감
이는 이번 초기업노조의 강경 행보와도 맞물린다. 높은 보상 수준을 원하는 조합원들이 버티고 있다면 노조도 이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제시한 중재안조차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초기업노조는 조합원 여론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기존 노조에 불만을 가진 조합원들을 흡수하면서 몸집을 불렸기 때문이다. 초기업노조가 노조 내 다수를 차지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조합원들의 성과급 요구에 집중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초기업노조의 노선도 이러한 성격을 보여준다. 초기업노조는 상급단체를 두지 않는 실리 노선을 앞세웠고 하청 노조 등 외부와의 연대보다 회사 내부 조합원 실익만을 강조한다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 고유의 집단적 특성이 이해집단인 노조를 통해 한층 더 선명해졌다는 분석이다. 이들 수장인 최승호 초기업노조 위원장도 1991년생으로 알려졌다.
'임금 인상률'서 '이익 배분'…교섭 합리성 '흔들'
문제는 조합원 불만을 그대로 담아내는 방식이 교섭의 합리성을 흔들 수 있다는 것. 초기업노조는 영업이익 중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고 상한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명확한 산식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뜻도 꺾지 않고 있다. 적자 사업부에도 성과급을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해지면서 업계를 중심으로 "근로의 대가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경영상 판단 영역인 이익배분 체계에 관한 개입"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회사는 기존 성과급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업계 1위를 달성할 경우 영업이익 중 10%를 상한 없는 특별포상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중노위도 매출·영업이익 모두 1위를 동시 달성하면 영업이익 가운데 12%를 재원으로 추가 특별포상을 지급하는 중재안을 냈다. 하지만 초기업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전삼노가 교섭을 맡을 때만 해도 임금 인상률이 노사 간 최대 쟁점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고 상한을 없애자 함께 반도체 훈풍을 탄 삼성전자 교섭도 경영상 이익 배분 논의로 옮겨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노조가 기업 경영도 좌우하는 형국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국민경제 '볼모'로…파업 예정인원, 하루 새 400여명↑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생산 차질, 수출 감소, 협력업체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높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파업이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면 긴급조정권을 포함한 대응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경고했다.
초기업노조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조합원 불만을 선명하게 대변하지 못하면 조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보상 요구 수위를 끝까지 밀어붙일 경우 파업 부담을 우려하는 직원들 불만과 여론의 반발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 일부 조합원 사이에선 DS부문 위주로 대변하고 있다는 불만도 누적된 상태다.
성과급 산정 기준을 둘러싼 불신은 회사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하지만 성과급 제도화를 앞세운 총파업 압박이 국민경제와 반도체 공급망을 볼모로 한 투쟁으로 비칠 경우 노조가 얻을 명분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조합원 불만을 대변하겠다면서 성장한 초기업노조가 오히려 조합원들과 회사를 함께 위험에 빠뜨리는 역설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총파업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은 계속 늘고 있다. 지난 17일 오후 기준 파업에 참여하기로 한 조합원 수는 4만7055명으로 전날보다 424명 증가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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