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안현민이 12일 KBO 올스타전에서 우수타자상을 수상하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RA) 1위. 경쟁자들에 비해 20~30경기를 덜 치르고도 당당히 KBO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우수선수(MVP) 후보로도 손색이 없는 선수가 신인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야구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안현민은 올 시즌 가장 뜨거운 스타다. 2022년 입단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고 나온 뒤 두 번째 시즌을 이번에야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기용되며 60경기 출전에 그쳐 아직 규정타석을 충족시키지는 못했으나 타율 0.356(216타수 77안타) 16홈런 53타점 42득점 39볼넷 36삼진 5도루(실패 0), 출루율 0.465, 장타율 0.648, OPS(출루율+장타율) 1.113을 기록 중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록이다. 국내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안현민은 WAR 4.60으로 전체 4위, 타자 1위를 달리고 있는데 이 기록이 누적 스탯이라는 걸 고려하면 안현민의 올 시즌 페이스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 수 있다. 2위 LG 트윈스 박동원(4.18·84경기), 3위 키움 히어로즈 송성문(3.94·91경기)과만 비교해보더라도 큰 경기수 차이를 보인다.
타율과 출루율, 장타율도 모두 장외 1위를 달리고 있다. 타율 1위 빅터 레이예스(롯데·0.340), 출루율 1위 최형우(KIA·0.432), 장타율 1위, 르윈 디아즈(삼성·0.595)를 모두 크게 앞서고 있다.
올스타전에서 경기를 앞두고 등장하고 있는 안현민. /사진=KT 위즈 제공 |
스스로도 전혀 생각지 못한 성적이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안현민은 "이 정도는 상상도 못했던 그림"이라며 "그렇기에 평가를 내기기도 힘들다. 내가 상상한 수준을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홈런 하나하나가 하이라이트 필름에 기록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난 5월 10일 수원 롯데전에선 올 시즌 최장거리 홈런포를 날렸다. 무려 비거리 145m를 기록했다. 평범한 홈런이 없다. 매 타구가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대형 홈런이다. 이강철 감독 또한 "'오늘은 또 얼마나 멀리 날릴까'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안현민에 대한 이야기에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다.
올스타 베스트12 선수단 투표에서 지명타자 1위에 오른 안현민은 팬 투표에서 밀렸으나 감독 추천 선수로 올스타 무대를 밟았다. 본 경기에 6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한 안현민은 자신의 별명인 고릴라 전신 탈을 쓰고 등장하며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고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 우수타자상과 함께 상금 300만원도 손에 넣었다.
다만 전날 진행된 홈런더비에선 기대와 달리 단 4개의 아치만 그리며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다. 우승을 차지한 삼성 디아즈는 "솔직히 우승은 KT 가이(안현민)가 할 줄 알았다.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힘이 좋은 선수라고 이야기해 왔고 오늘은 그냥 운이 없었던 것 같다"며 "다음에 만날 기회가 된다면 안현민에게 '넌 이미 좋은 힘을 갖고 있는 타자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고 이례적인 칭찬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안현민은 앞선 인터뷰에서 "팬분들은 (홈런 더비를) 많이 기대를 해 주시는 것 같은데 저는 크게 기대가 없다"며 "나간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고 앞에서 먼저 많이 치면 빠르게 포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안현민이 첫 타석에서 전신 고릴라 탈을 쓰고 타석에 나서고 있다. /사진=강영조 선임기자 |
기존에 홈런 더비에서 욕심을 내다가 타격 페이스가 흐트러져 후반기에 고전한 선수들의 사례가 종종 있었다. 안현민도 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고 무리해서까지 많은 홈런을 치지는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홈런 더비 이후에도 "더블 헤더보다 힘들었다. 배정대 선배는 잘 던져주셨는데 내가 어디에 씌었나 싶을 정도였다"며 "홈런 더비 우승 욕심은 크지 않았는데 후반기 부진하면 다른 분들이 홈런 더비에서 원인을 찾으실까 봐 그게 조금 신경 쓰인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만큼 후반기 성적이 정말 중요하다. 안현민 스스로도 지금의 성적이 신기루 같다고 말할 정도로 상상치도 못한 수준의 성적을 내고 있다. 그 페이스가 시즌 끝까지 이어질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페이스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대한 좋은 감각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크게 무너져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이강철 감독은 안현민에 대해 "다른 홈런 타자와 다르게 컨택트가 되고 눈이 좋으니 상대하기 너무 힘들다. 출루율이 오르니 타율도 안 떨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상대가 좋은 공을 주지 않지만 안현민이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욕심을 내지 않아 좋은 성적이 유지될 수 있다는 평가였다.
워낙 빼어난 파워를 가졌기에 땅볼 타구도 안타가 되는 일이 많다. 올스타전에서도 3루수 방면을 향한 강습 타구로 1타점 적시타를 날리기도 했다. 멜 로하스 주니어는 최근 부진에 빠졌을 때 안현민의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움을 나타내며 "(파워로는) 국내에서는 비견될 선수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해외 리그에서도 이 정도 파워를 가진 선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면서도 "가장 가까운 선수를 제 기억에서 떠올려 본다면 조금 더 젊었을 때 박병호가 떠오른다"고 전했다.
홈런을 치고 자신의 근육을 과시하는 세리머니를 펼치는 안현민. /사진=KT 위즈 제공 |
안현민은 메이저리그(MLB)의 살아 있는 전설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트라웃은 통산 15시즌 1587경기에 나서면서도 OPS 0.984을 유지하고 있는 명품 타자다. 안현민 또한 타율보다는 출루율과 장타력을 앞세워 높은 OPS로 WAR가 높은 타자가 되겠다는 생각이다.
전반기를 마친 안현민은 "OPS든 WAR이든 지금 어떤 기록을 내고 있는지는 다 알고 있는데 타석에 들어가서 'WAR을 올릴 수 있는 찬스다'라고 생각하고 공을 치는 건 아니지 않나"라며 "조금 더 집중하게 되고 장타가 필요할 때는 그런 스윙을 하려고 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병호와 비교에 대해서도 "너무 극찬이다. 저 또한 그 길을 가면 좋겠지만 사실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병호 선배님처럼 빗맞아서 홈런이 나오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빗맞으면 안타가 된다"며 "타석에서 홈런을 노리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반기에도 그런 느낌으로 계속 접근을 하다 보면 지금처럼 성적이 많이 떨어지지 않고 유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후반기에 나서는 마음가짐을 나타냈다.
벌써부터 MVP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송승기(LG)가 17경기에서 8승 5패, 평균자책점(ERA) 3.39로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음에도 커다란 변수가 없다면 신인상은 안현민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경기 출전 기회가 훨씬 적었고 아직까지는 뜨거운 페이스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백호(KT), 이정후(샌프란시스코), 구자욱(삼성), 양준혁(전 삼성) 등 걸출한 타자 신인왕들이 있었지만 안현민 만큼의 임팩트의 주인공은 없었다. 안현민의 후반기 행보는 프로야구 잔여시즌을 바라보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현민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안호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