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수로에 떠오른 붉은 머리 수십 개…무슨 일? [여기는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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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비엔날레는 자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 두 곳에서 열린다. 바닷가 옆 평화로운 공원에 국가관들을 감상하는 게 자르디니라면, 수상 도시 베네치아의 심장과 같은 옛 조선소 건물을 활용한 아르세날레는 이 도시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 아르세날레 전시장의 끝자락. 아르세날레 옆 거대한 수로 위에 여성의 붉은 두상 수십 개가 떠 있었다. 아일랜드 작가 앨리스 마허의 설치작품 ‘우라노스의 딸들’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는 자신의 딸들을 어둠 속에 가둬버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딸들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가부장제라는 신화 속에 갇힌 여성들이 해방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올해 비엔날레 본전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올해 본전시 주제는 ‘단조로(In Minor Keys)’다. 음악의 단조를 뜻하는 동시에 ‘주류가 아닌 소수의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세계 미술계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역과 정체성을 중점적으로 조명하겠다는 의미다.

Les Filles d’Ouranos, 1996. Resin, expandable foam, chains & anchors. 15 elements, each 50 x 60 x 50 cm. / Photo by Francois Poivret/elephant.art 홈페이지.

Les Filles d’Ouranos, 1996. Resin, expandable foam, chains & anchors. 15 elements, each 50 x 60 x 50 cm. / Photo by Francois Poivret/elephant.art 홈페이지.

흑인 작가 집중 조명

올해 총감독은 카메룬 출신의 코요 쿠오다. 비엔날레 131년 역사상 아프리카계 총감독은 쿠오가 처음이다. 지난해 암으로 별세하기 전 그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였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듯 전시 주제인 소수자 중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건 흑인이었다. 본전시 참여 111팀 중 아프리카 출신 비중이 20%에 이른다. 전시장은 아프리카의 전통과 역사, 종교 등 정신문화와 관련된 작품들로 채워졌다.

전시 초반 관람객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빅 치프 데몬드 멜랑콘의 거대한 붉은 깃털 조각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839년 노예로 잡혀가던 흑인들이 선상 반란을 일으킨 ‘아미스타드 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케냐 나이로비 현대미술관 소장품에 집중한 섹션을 비롯해 식민주의와 노예제도의 후유증을 다룬 작품도 곳곳에 배치됐다.

다음으로 집중 조명을 받은 곳은 라틴아메리카·카리브다. 이곳 출신 작가 비중은 15%. 최근 10년간 비엔날레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비율이다. 반면 동아시아 작가들의 참여는 줄었다. 이번 본전시 작가 중 한국 국적은 제주에서 활동하는 요이(본명 류용은)가 유일하다.

요이 작가 작품. / 사진. © 강은영 기자

요이 작가 작품. / 사진. © 강은영 기자

한국계 작가로는 마이클 주와 갈라 포라스-김이 이름을 올렸다. 마이클 주는 금속 구조물에 매달린 거대한 모빌 형태의 조각 작품으로 인간 문명과 환경의 균형을 다뤘다. 갈라 포라스킴은 본전시관 바로 옆 응용예술관을 단독으로 배정받아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V&A)과 함께 전시를 열었다.

Michael Joo, Neospheres Expended (Organic Growth, Crystal Reef), 2026, mixed mediate installation, 4 LED panels, support structures, digital and custom AI programming. / 사진 출처. Yale Alumini 홈페이지 캡처

Michael Joo, Neospheres Expended (Organic Growth, Crystal Reef), 2026, mixed mediate installation, 4 LED panels, support structures, digital and custom AI programming. / 사진 출처. Yale Alumini 홈페이지 캡처

국가관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여럿 나왔다. 전시 입구에서 관객들을 처음으로 맞는 예술 작품은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시인 라파트 알아리르의 시 ‘내가 죽어야 한다면’이다. 아비 모그라비가 가자 공습을 비판한 영상 작품도 등장했다.

‘오아시스’ 호평…“주제 식상” 지적도

올해 전시장에서는 오래 앉아 감상해야 하는 영상·미디어 작품의 비중이 확연히 높아졌다. 현대미술의 주류가 영상·미디어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결과다. 이날 전시장에서는 대형 스크린 앞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다만 영상·미디어 작품은 관람객의 시간과 집중력을 크게 소모한다. 이를 감안해 쿠오는 올해 참여 작가를 지난번(331팀)의 3분의 1 수준인 111팀으로 줄였다.

전시 동선 곳곳에 ‘오아시스’라 이름 붙인 쉼터를 배치한 것도 관람객이 천천히 작품을 음미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동선과 디자인도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짜였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작가 수가 많아 집중하기 어렵고 관람객의 체력 부담이 크다는 기존 비엔날레의 단점을 상당 부분 보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비판도 있다. 2022년 여성, 2024년 이민자, 2026년 아프리카·중남미 등으로 세부 주제만 바뀌었을 뿐 ‘소수자’라는 화두가 계속 반복되면서 전시가 다소 식상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본전시 개막을 앞두고 별세한 쿠오 감독이 끝까지 작업을 마무리했더라면 더 완성도 높은 전시가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베네치아=성수영·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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