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나선 '사랑길', 애써 세운 '잠시 멈춤' [e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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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 ‘사랑길 따라’(2024 사진=작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세상이 궁금했나. 아니 그리웠나. 소나무가 삐죽하게 키를 키웠다. 그 큰 호기심을, 그 긴 그리움을 마중한 건 달이다. 꽉 채운 얼굴로 소나무를 맞고 있다.

평범한 자연물로 서정성을 극대화한 이 장면은 작가 조성모(66)의 붓끝에서 나왔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한국 소도시에 띄울 만한 감수성을 그려낸다. 달·나무 등 동양적 소재로 에두른 ‘향수’란 걸 알아채긴 어렵지 않다. 사실적인 기법으로 공들여 눌러낸 것까지 보이니.

그런데 정겹게 묘사한 그 대상과 절묘한 대비를 이루는 건 의외의 배경이다. 그저 살가운 문양이려니 다가섰다가 실체를 확인하면 놀랄 수밖에 없는데. 알파벳 ‘L·O·V·E’를 무수히 새겨 만든 묵직한 ‘사랑판’이니 말이다.

조성모 ‘사랑길 따라’(2022), 캔버스에 오일, 76×38㎝(사진=작가)

초기에는 아니었다. 1992년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에는 첨단문명이 벌려 놓은 흔적을 강하고 날카로운 그어냈더랬다. 결국 ‘사랑길 따라’(2024)는 먼 타국에서 발을 뗀 여정이었던 거다.

그 길이 도시를 거쳐 시골로 갔다가 낮은 물론이고 밤까지 이어지지만 끝내 ‘고향’으로 향한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을까. 언제부턴가 작품 속에 표지판이 섰다. 노란 면에 빨간 테두리를 씌운 삼각형으로 ‘잠시 멈춤’을 알린다. 이제 숨을 좀 고르란 뜻인가. 길도 사랑도 삶도.

5월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토포하우스서 여는 개인전 ‘사랑길 따라’에서 볼 수 있다. 14년 만의 고국 개인전이다. 120여 점을 걸고 순회전으로 꾸린다. 서울전 이후 충남 부여문화원(5.29∼6.4)을 거쳐 부산 해운대 K갤러리(6.7~6.21)로 이어간다. 캔버스에 오일, 61×61㎝. 작가 제공.

조성모 ‘사랑길 따라-눈 내리는 아러킬 길’(2018), 캔버스에 오일, 50×25㎝(사진=작가)
조성모 ‘사랑길 따라-보름달과 함께한 슈네멍크 산’(2018), 캔버스에 아크릴·혼합재료, 130×162㎝(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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