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처음으로 공인노무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5월 첫 방영을 앞두고 있다. 정경호 설인아 등 인기 배우가 주연을 맡아 더 화제다. 그간 노무사가 등장하거나 근로감독관, 직업환경의학전문의 등 노동 문제와 밀접한 직업군을 다룬 작품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노무사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법조계 마이너’로 여겨진 노무사의 위상이 달라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인사노무업계에 따르면 노무사의 인기는 실무 현장에서 체감할 정도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서울의 한 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예전엔 기업 컨설팅과 사내 노무 리스크 관리 같은 B2B(기업 간 거래) 성격의 업무 비중이 컸는데 최근에는 개인이 법인 사무실로 찾아와 임금·해고 사건을 의뢰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일반 직장인뿐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이나 자영업자들도 꽤 찾는다”고 전했다.
“노무사 될래” 올해 1만3500명 몰려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도 노무사 인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1990년대만 해도 노무사 지원자는 매년 600~3000명대에 그쳤다. 같은 시기 최종 합격자는 103명을 배출한 1999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10~30명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엔 지원자도, 합격자도 눈에 띄게 늘었다. 2023년 노무사 지원자는 1회 시험이 치러진 1986년(7만1696명)을 제외하고 처음 1만 명대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1만1646명, 1만3521명이 몰렸다. 합격자도 2018년 이후 매년 300명 이상 나오고 있다. 2022년엔 549명이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해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합격자 연령을 보면 2030세대 비중이 절대적인데 노무사 시험이 취업난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노무사 합격자 329명 중 20대는 172명, 30대는 139명으로 나타났다.
전문직으로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점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노무사 합격 이후엔 노무법인에서 일하거나 직접 개업할 수도 있지만 기업 인사노무부서, 교육·공공기관, 로펌, 인사컨설팅회사 등 다양한 곳으로 취업이 가능하다. 최근엔 노무법인이나 개업을 선택하는 대신 안정적 지위와 소득이 보장된 대기업·공공기관 취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기업에서도 규모와 상관없이 노무사 수요가 늘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자문을 주로 맡는 한 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직장인들이 임금이나 해고 규정 이해도가 높아 작은 회사들도 소액 자문계약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 근로시간, 연장·야간·휴일근로 관련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도 노무법인 문을 두드린다. 직원 3명을 둔 한 출판업체 대표는 “디자이너들이 이직이 잦아 퇴사하는 사례가 많아서 퇴직 절차를 밟을 때 자문하기도 하고 일상적으로는 임금계산법 문의를 많이 한다”고 했다.
노동분쟁 커질수록 시장도 커져
노무사 시장 전망도 밝다. 근로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노동 관련 분쟁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노동위 전체 사건 처리 건수는 2021년 1만5811건에서 2023년 1만8946건으로 늘었다. 최근 5년간 매년 1만5000~1만8000건이 노동위에서 처리됐다. 2023년 기준 전체 사건 가운데 96.6%는 노동위 판정대로 종결됐다. 노동위가 분쟁 종착지로 인식될수록 주연인 노무사를 찾는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다.
플랫폼 노동 확산, 친노동 입법 등으로 노동 분쟁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흐름도 노무사 수요를 키우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해마다 급증세를 보이고, 근로자성 분쟁은 미용사, 헬스트레이너, 유튜버 스태프, 데이터라벨링 업무 종사자 등 산업 전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 노무사를 가장 많이 찾는 임금체불·부당해고 사건도 줄지 않고 있다.
노동정책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노무사 시장은 호황기를 맞기도 한다.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 당시 추진·도입된 주 52시간 근로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은 리스크 예방과 분쟁 관리를 맡는 노무사의 역할을 부각했다.
한 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정부가 친노동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거나 노동개혁을 부르짖을 땐 말 그대로 ‘돈이 되는 일’이 많아진다”며 “노동 관련 분쟁 요소가 늘어나는 만큼 노무사 시장이 커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취업난에 밀려 노무사 시험에 무턱대고 지원했다가는 ‘장수생’으로 고전하는 경우가 많아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 수험가에선 전업 수험생은 통상 1~2년,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할 땐 합격까지 2~3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본다. 최근 시험제 개편 이후엔 사회보험법 난도가 특히 높아졌고 노동법 부속법령 출제 비중이 30%에서 50% 정도로 늘어 까다로워졌다.
노무사 준비 학원 ‘일타 강사’로 꼽히는 김기범 노무사는 “매년 350명이 합격한다고 가정했을 때 합격하는 전략은 350개지만 불합격하는 이유는 수천 가지 이상”이라며 “합격 수기를 참고하고 학원·합격자 상담 등을 거쳐 본인에게 맞는 전략을 선택해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수험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