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만능주의에 함몰된 노란봉투법 우려스럽다[기고/송헌재]

2 days ago 7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8월 초에 입법화된다고 한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개념 확대, 쟁의행위에 대한 개인 손해배상 책임 제한이 핵심 내용인데 이는 실용적인 시장주의 정부가 되겠다고 천명한 현 정부 의지와 정면 배치된다.

사용자 범위 확대로 원청 사용자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면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 그런데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개념이 너무 모호하다. 모든 하청 기업은 원청의 경영 활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실질적 지배력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한 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여기에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다 포함할 수는 없다.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하면 이것이 교섭 대상이 되는 사안인지 판단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갈등비용 발생과 생산성 하락을 피할 수 없다.

노동쟁의 개념의 확대는 근로조건에 영향을 준다면 사업 경영상의 결정도 노조가 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존에 사용자의 고유권한으로 여겨져 쟁의행위 대상이 아니었던 것들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쟁의행위의 대상이 된다. 기업이 해외 진출을 위한 대규모 투자 결정을 하면 노조가 국내 투자 축소 등을 문제 삼아 파업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여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쟁의행위에 대한 개인 손해배상 책임 제한으로 사용자의 방어권이 크게 약화되었다. 주된 쟁점은 노조가 파업 중일 때 대체근로 및 새로운 도급 계약을 금지하는 노조법 제43조에 있다.

개정안은 근로자의 배상 책임을 크게 완화하여,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하는 손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사용자의 최후 수단이었던 조합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무력화하였다. 해외에서는 쟁의행위의 범위를 넓히고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을 인정하면서도 대체근로를 허용하여 사용자의 방어권도 함께 고려한다.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등이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법률만능주의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은 법제정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기업을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은 행위규칙과 처벌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여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번 노란봉투법은 노동시장뿐만 아니라 원하청 관계의 불확실성을 더욱 크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근로조건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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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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