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피용익 이데일리 정치부장, 정리=조용석 기자] “장기연체채권 매입·소각 프로그램(배드뱅크)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 축하를 위해 급조된 선심성 정책이다. 앞으로는 빚을 갚지 않아도 나라에서 탕감해준다고 생각하게 됐다. 선거 때마다 끊임없이 등장할 우려도 크다.”
윤석열 정부에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포함된 이른바 ‘배드뱅크’에 대해 이같이 우려했다. 배드뱅크란 정부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채권을 일괄적으로 매입 후 탕감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시행시 113만4000명의 연체 채권 16조4000억원이 소각될 예정이다. 필요한 예산 8000억원 중 4000억원은 이번 추경에 포함됐고 나머지 4000억원은 금융권이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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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도덕적 해이 큰 문제…혈세로 사적채무 완전 탕감”
추 의원은 “무엇보다 도덕적 해이가 가장 큰 문제다. 민생경제는 구조적·경기적 요인으로 앞으로도 나아졌다가 어려워지기를 반복할 텐데, 이제 어려워질 때마다 개인 빚을 국민 세금으로 탕감을 해달라는 요구가 나올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열심히 빚을 갚고 있는 성실 상환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라고 우려했다.
기존에도 신용회복기금·행복기금과 같은 매입형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있으나 정부가 채무를 일괄 매입 후 100% 소각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시적으로 운영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은 채무를 완전 소각하긴 했으나, 채무 한도가 1000만원으로 낮았고 채무자 직접 신청하는 형태였다. 또 재원도 금융권이 마련했다.
추 의원은 “국민 혈세로 개인의 빚, 사적 채무를 완전히 탕감해주는 것은 우리 역사상 유례가 없고, 제가 알기로는 멀쩡한 선진국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투입해서 개인의 사적 채무를 탕감해 주는 프로그램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채무 탕감 대상이 코로나19 등 외부요인과 관련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추 의원은 “새출발기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원금을 감면해주겠다는 취지이니, 국민을 설득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정책은 코로나와 관련이 없다”고 했다. 배드뱅크 대상은 7년 이상 연체된 빚으로, 2018년 6월 이전부터 연체가 시작돼야 한다.
“도박 빚 못 가려…탕감 대상자 재산파악도 어려워”
특히 그는 도박이나 사행성 소비로 인한 부채도 탕감 대상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추 의원은 “당국에서 이를 가려낸다고 하지만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것도 아닌데 파악할 수 있겠나.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심지어 일부 외국인 채무도 탕감된다는 얘기도 있다. 성실히 일하며 빚을 갚는 일반 국민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빚을 탕감받는 연체자들의 재산·소득을 당국이 파악하기도 어려운 것도 추 의원이 생각하는 문제점이다. 그는 “배드뱅크가 강제 권한이 없는데 대상자들이 빚을 갚을 재산·소득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라며 “채무자들의 재산 상황을 조사 후 빚을 탕감하는 법원의 개인회생이나 파산과는 크게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 혈세로 사적 채무를 완전히 탕감해 주는 발상은 부작용을 숙고하면서 철저히 검토해야 했다. 정치적 이유로 너무 급조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현재도 금융위원회 산하 신용회복위원회나 금융사 자체 프로그램 등 채무조정 프로그램도 많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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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현금살포위주’ 추경 지적…“대한민국 미래 고민했나”
추 의원은 2차 추경안에 부작용이 우려되는 배드뱅크를 포함해 전 국민에게 13조원의 현금지원을 하는 소비쿠폰 등이 포함된 데 대해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민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올해 우리나라 환경분야 예산이 13조원이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25조원 수준”이라며 “일종의 당선 사례금인 소비쿠폰에 무려 13조원을 투입하는 게 적절한가. 심지어 국가 빚을 내 투입하고 있다”며 “대기업 회장과 국회의원까지 왜 15만원을 받아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또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추경으로 일시 보완하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우리는 이미 선거 직전에 1차 추경(12조원 규모)을 실시했다”고 덧붙였다.
추 의원은 최근 기재부가 2차 추경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 계획에 ‘재정준칙 법제화 지속 추진’ 문구 삭제한 것도 크게 아쉬워했다. 추 의원은 경제부총리 시절 재정준칙 법제화에 공을 들였으나 민주당에 막혀 실패했다. 그는 “재정준칙 준수를 의무화 할 수는 없다고 해도 재정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국가채무가 벌써 1300조원에 육박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