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퍼주다 추락한 인텔, 성과급에 멍든 GM…삼성전자의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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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 삼성전자 노조 투쟁 결의대회 > 삼성전자 노동조합원 4만여 명은 지난달 23일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며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총파업을 예고했다. /최혁 기자

< 2026년 4월 삼성전자 노조 투쟁 결의대회 > 삼성전자 노동조합원 4만여 명은 지난달 23일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며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총파업을 예고했다. /최혁 기자

삼성전자 경영진은 15일 경기 평택 공장 노동조합 사무실로 달려갔다. 협상 테이블로 나와 달라고 노조에 요구했다. 노조는 거부했다. 45조원을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주장을 꺾지 않고 있다. 파업도 강행하겠다고 했다. 울산에서는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하고 있다. 이 밖에 카카오, 현대자동차 노조 등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 성과급일까. 성과급 논란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배당 퍼주다 추락한 인텔, 성과급에 멍든 GM…삼성전자의 길은

이 논란은 일면 긍정적이다. 과거 한국 사회를 뒤흔든 기업 관련 분쟁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통 분담’이 아니라 ‘성과 배분’이 주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 배분을 둘러싼 분쟁은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대규모 분배 요구는 1987년 7월 있었다.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 정당한 임금 지급과 노조 설립 허용이 주된 요구였다. 회사도, 사회도 3저호황의 결실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시대에 벌어진 이 분쟁은 이후 중산층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

또 다른 대표적 분배 요구는 2000년대초 일어났다. 사회 단체와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했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수 주주 권리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아지는 성과도 있었다.

2026년은 이같은 대한민국의 분배 논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1987년 연대를 기반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요구는 2026년 “기업 이익의 일부는 우리 몫”이라고 주장하는 ‘이익 공유 투쟁’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인공지능(AI) 붐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이익이 급증하자 근로 조건이 아니라 기업의 자본 배분 전략까지 노동 의제로 끌어들이고 있다. 과거 노조와 달리 현재 투쟁을 주도하는 것은 ‘공정과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라는 점도 다르다.

한국 사회는 이제 결핍이 아닌 잉여의 시대에 어떻게 자원을 배분할 것이냐를 숙의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그 결과가 10년후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보다 앞서 이를 경험한 해외 기업이 주는 교훈은 성과 보상도, 주주 환원도 과도하면 독이 된다는 점이다. 기업 환경은 급변하기 때문이다.

미래 투자금까지 짜내 나눠준 글로벌 기업들
임금 부담에 경쟁력↓

2015년 10월 에어프랑스 오를리공항 책임자인 피에르 플리소니에가 파리 본사에서 열린 구조조정 반대 시위 도중 셔츠가 찢긴 채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BBC

2015년 10월 에어프랑스 오를리공항 책임자인 피에르 플리소니에가 파리 본사에서 열린 구조조정 반대 시위 도중 셔츠가 찢긴 채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BBC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엥 그룹(PSA)의 합작으로 탄생한 스텔란티스는 북미 지역에서 미국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단체협약에 따라 2019년 이익공유제를 도입했다. 성과급 규모가 영업이익에 연동되는 구조다. 자동차 업황이 좋았던 2023년까지 3년간 이 회사는 전세계 직원들에게 60억 유로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노동자들의 사기는 최고조로 치솟았다.

문제는 호황기에 픽업 트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판매해 번 돈을 전기차·배터리 등의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기 전에 성과급으로 써버렸다는 점이다. 지난해 적자를 기록한 스텔란티스는 올해 이익공유제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노조는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성과급의 늪에 빠진 기업들

배당 퍼주다 추락한 인텔, 성과급에 멍든 GM…삼성전자의 길은

전문가들은 “성과급 때문에 망하는 기업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과급 부담이 몰락의 실마리가 되는 사례는 많다고 지적한다. 특히 스텔란티스처럼 성과급을 고정급화한 기업은 대부분 인건비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전기차 시대를 맞아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시기에 기업의 유연한 대응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스텔란티스와 비슷한 이익공유제를 시행하는 제너럴모터스(GM)도 2028년까지 93억달러(약 14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GM은 이런 비용 부담 때문에 차량 1대를 생산하는 비용이 현대자동차 등 경쟁사보다 1500달러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인텔은 높은 배당율을 관성처럼 유지하다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다. 인텔은 2022년 59억9700만달러, 2023년 30억8800만달러, 2024년 15억9900만달러를 배당으로 지급했다. 하지만 2024년에는 187억5600만달러 순손실을 냈고, 대규모 구조조정과 비용절감에 들어가면서 2024년 4분기부터 배당을 중단했다.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뒤처진 기업이 배당 관성을 유지하다가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게을리 한 결과였다.

국내에서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요구는 낯설지 않다. 현대자동차노조도 해마다 임금협상에서 ‘영업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해달라‘고 요구해왔다. 다만 지금까지는 기본급, 정년 연장, 퇴직금 인상 등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협상 카드였을 뿐 실제로 이를 명문화한 기업은 없었다.

< 1987년 7월 현대중공업 노동자 대투쟁 > 1987년 8월 파업을 선언한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 근로자들이 울산공설운동장(현 울산종합운동장)으로 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경DB

< 1987년 7월 현대중공업 노동자 대투쟁 > 1987년 8월 파업을 선언한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 근로자들이 울산공설운동장(현 울산종합운동장)으로 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경DB

하지만 SK하이닉스 노사가 2021년 10년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합의했고, 삼성전자 HD현대중공업 카카오 등 대기업이 잇따라 영업이익의 15~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면서 임금협상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투입된 자본(주식, 부채)의 비용(가중평균자본비용)을 제한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성과급 재원으로 삼았다. 투자자를 위해 얼마나 남겼는지를 측정한 후 주주 몫 일부를 나눠주는 개념이다. 이 기준을 영업이익으로 바꾸면 노조가 주주의 몫까지 갖게 된다.

◇TSMC는 직급별 차등 성과급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15일 페이스북에 “기업을 자본과 노동의 경제적 계약의 산물로 보는 서구와 종업원을 가족으로 인식하는 한국의 기업관 차이”라고 진단했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제도화하는 건 전 세계 어떤 기업도 시도하지 않은 실험이다.

GM 스텔란티스같이 이익공유제를 시행하는 기업도 직무 가치와 대체 가능성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고, 직군에 따른 상한을 두고 있다. 대만 TSMC는 순이익의 12%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지만, 직군별 한도가 정해져 있고, 생산직의 성과급은 연봉의 30%로 상한을 두고 있다.

글로벌 조직·인사관리 전문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김승해 전무는 “한국처럼 직무급이 정착되지 않아 생산직과 사무직 간 형평성 논리가 강한 회사에서는 성과급 보장을 명시화하는 순간 고정급, 연봉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성과급이 과도한 집단 배분 구조로 비칠 경우 ‘주주 이익 훼손’ 논란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노무 담당 임원은 “글로벌 기준에서 인사 담당 직원과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생산직 근로자에게 똑같은 성과급을 나눠주는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파운드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TSMC의 핵심 인재를 영입하려고 하는데 생산직과 똑같은 성과급을 준다고 하면 데려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파격적인 성과급이 구성원의 사기를 높이고, 동기 부여를 강화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삼전닉스 고시(삼성전자·SK하이닉스 입사 경쟁)’,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 프리미엄’이란 신조오에서 보듯 의대로 몰리던 이공계 인재를 유입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입된 인재를 장기간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SK하이닉스의 직원은 앞으로 3년간 약 27억원의 성과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가 좋을 때 최대한 많이 벌고 떠나는 직원이 적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영효/곽용희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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