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없는 '배달앱', 연기 없는 '담타'…가짜관계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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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담타(담배 타임·흡연시간)'는 즐길 수 있다. 실제 연초 대신 화면 속 가상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익명 채팅창에서 모르는 사람과 짧게 속내를 털어놓고 '담타 감성'을 나누는 식이다. 배달앱을 켜는 즐거움만 남긴 서비스도 등장했다. 메뉴를 고르면 결제·배달 추적 과정이 진행되지만 정작 음식은 오지 않는다.

디지털 공간을 기반으로 한 '초경량 공감 커뮤니티'가 최근 입소문을 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가벼운 소통으로 위안을 얻는 모습이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는 관측이다. 직장 스트레스에 고물가와 소비 피로 등이 겹치면서 실제 관계를 맺고 돈을 쓰는 대신 '비용이 낮은 대체 경험'을 찾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모조 사회성' 실제 인간관계 변화 불러올 수도

학계에선 최근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소통 양식을 '모조 사회성' 또는 '가짜 사회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과 같은 형태를 보이면서 심리적 효과도 동일하게 재현하지만 대면 소통에 따른 위험, 불확실성, 의무·책임이 약화된 사회성을 뜻한다.

이는 진보래 중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지난달 학회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통해 언급한 개념이다. 모조 사회성은 '좋아요' 같은 단순한 사회적 자극부터 유튜버와의 일방적 친밀감, 챗봇·생성형 인공지능(AI)과의 대화까지 포괄한다.

이 개념의 배경엔 '가짜 사회성', '가짜 관계'가 실제 인간관계의 뿌리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진 교수는 한경닷컴과의 통화에서 "위험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을 멀리하는 대신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디지털 매개 방식의 상호작용을 선호하고 있다"며 "사람과 사람의 실제 만남을 고위험 활동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가짜 사회성'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접촉을 대신하게 되면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나 사회성이 어떻게 변해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모조 사회성은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의사사회적 상호작용(PSI)·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세 갈래로 구분된다.

CMC는 문자 기반 소통처럼 이용자가 말할 시점과 표현을 조절할 수 있어 직접 통제 가능한 범위가 넓다. PSI는 방송인·유튜버·가상 캐릭터와 실제로 아는 사이처럼 느끼는 일방적 친밀감이다. HCI는 컴퓨터나 챗봇, 소셜 로봇을 사회적 행위자처럼 대하는 기술적 실재감과 말한다.

온라인 담타나 음식이 오지 않는 배달앱도 모조 사회성의 일상적 사례로 꼽힌다. 온라인 담타는 실제 흡연 없이도 담타가 주는 휴식과 익명 대화의 감각을 제공한다. 음식 없는 배달앱은 실제 소비를 하지 않고도 배달앱을 켤 때의 설렘과 선택 행위를 흉내 낸다.

이 같은 디지털로 매개되는 '가벼운 소통'은 현실 속 부담을 줄이고 정서적 보상과 소통만 남기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면 소통이 단절된 '가짜 관계'는 자칫 관계의 파편화,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성형 AI '가짜 관계' 심화 …"사회적 면역력 약화 우려"

여기에 생성형 AI의 등장은 가짜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진 교수는 생성형 AI를 모조 사회성이 가장 집약된 사례로 본다. AI는 자연어로 대화한다는 점에서 CMC와 닮았고 관계를 맺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PSI의 성격을 띤다. 알고리즘 기반의 컴퓨터 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HCI에도 해당한다. 이용자 입장에선 언제든 말을 걸 수 있고 즉시 답할 뿐 아니라 이전 대화의 맥락을 반영하는 상대가 생긴 셈이다.

실제로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해 직장 고민이나 사주풀이 기반의 연애·결혼 상담을 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직장 동료와의 '업무 호흡'을 분석하거나 '썸남'과의 대화에서 호감 신호를 읽어내려는 시도가 모두 생성형 AI를 통해 이뤄진다.

물론 AI 상담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정서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 직접 사람을 만나기 어렵거나 평가받는 것이 두려운 상황에선 안심하고 말문을 열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 편리한 관계가 사람 사이의 직접 소통을 대체할 때 발생한다. 실제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엔 물리적 시간, 인지적 자원, 거절과 갈등, 상실의 위험이 따른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반복적이고 사소한 상호작용이 필수다.

반면 디지털 미디어와 AI가 제공하는 관계는 가볍고 빠르다. 온라인 담타에서 짧게 위로받고 가짜 배달앱에서 소비 욕구를 달래며 AI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일은 모두 적은 비용으로 가능한 소통이다. 이는 안전하고 마찰 없는 상호작용, 상처 없는 친밀감에 익숙해지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인간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이 AI와 같은 기술의 새로운 쟁점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 교수는 "귀찮아할지 모르는 애인이나 친구에게 말을 거는 대신 24시간 대기 중인 말동무(AI 챗봇)를 찾는 일이 더 빈번해진다면 (인공지능은) 인간 친밀성 자체에 균열을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디어 기술이 제공하는 대리적 상호작용과 인공지능 친구는 물리적으로 안전하고 위생적이지만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이 신체의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처럼 마찰 없고 안전한 소통은 인간의 사회적 면역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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