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이 아닌 ‘이호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배우 박진영은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장애를 지닌 변호사 이호수 역을 맡아 밀도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자기혐오가 있는 인물이지만 따뜻한 성정으로 결점을 장점으로 승화하는 과정이 섬세한 연기력과 맞물려 몰입감을 높였다.
박진영은 ‘미지의 서울’ 종영 인터뷰에서 캐릭터 구축 과정과 장면별 에피소드를 풀어냈다.
그는 “전역하고 2주 만에 첫 촬영을 했다. 전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너무 긴장했다. 입대 전에도 첫 촬영 전날은 긴장을 했는데 이 감정을 몇 년 만에 느끼니까 내가 예전에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더라. 캐릭터를 수학 문제지 풀 듯 딱딱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모든 게 낯설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로사와 냉장고를 보러 다니는 장면, 황 비서(신정원 분)에게 뜨개질 수세미를 나눠주는 장면이 첫 촬영이었다. 원미경 선생님이 너무 좋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첫 촬영을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라며 “그리고 감독님의 디렉션을 듣고 감독님만 믿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황 비서님과 대화하는 장면이었는데 내가 계속 반응을 하니 감독님이 반응을 덜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게 ‘너무 호수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나타냈다.
“군대에 연등 시간이라는 게 있다. 오후 10시에 취침인데 신청을 하면 자정까지 공부를 할 수 있다. 오후 10시부터 자정까지 대본을 봤다. 힘들지 않았고 정말 좋았다. 겨울에 눈만 쓸다가(웃음) 나는 군 생활을 재미있게 했다. 인생에서 꼽을 정도의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고립되어 있으니 불안하고 외롭기도 했었다. ‘미지의 서울’ 대본을 보면서 ‘괜찮아. 지금 그대로여도 괜찮아’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또 ‘이호수 외관에 적절한 체중이 68kg인 것 같아 유지하려고 했다’라며 “입대 전에 69kg 이었는데 군대에서 체중이 10kg 쩠다. 지금은 68kg이다. ‘미지의 서울’ 촬영을 할 때 내 아침 루틴은 몸무게 재기였다. 매니저가 찍어준 영상을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외관이 호수 같다’ 느낀 부분이 있었다. 그때 몸무게가 68kg이었다. 원래는 살이 안 찌는 체질이었는데 군대에서 삼시세끼 고봉밥을 먹으니 확 찌더라. 요즘엔 촬영이 끝나서 관리를 하면서도 폭식을 할 때도 있다. 짜파게티. 김치와 함께 먹으면 정말 말이 필요 없다”라고 덧붙였다.
박진영에 따르면 이호수 캐릭터의 주안점은 크게 두 가지다. 어조와 공간감.
그는 “개인적으로 갖는 톤과 관계마다 나오는 톤을 따로 정했다. 관계의 톤부터 말하자면, 마주하는 선배 배우들마다 호흡이 달랐고 상대방에 반응만 해도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라며 “개인적인 톤은 이호수가 가진 핸디캡에서 파생되는 버릇과 습관적인 말투에 대한 고민이었다. 호수는 10년 이상을 청력이 좋지 않은 걸 감추기 위해서 더 들리는 것처럼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을 본다거나, 내가 말을 잘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천천히 또박또박 대사를 했다. 일부러 한 템포 쉬고 대사를 시작하기도 했다. 호수가 늘 신경을 쓰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공간감에 대해선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전역하고 첫 촬영 때까지 2주 시간이 있었을 때, 이어플러그를 한 쪽에 꽂고 광장이나 마트를 가봤다. 좁은 공간에서는 잘 들리는데 공간이 넓어지면 잘 들리지 않더라”라며 “드라마 장면 중에서 예를 들자면 결혼식장. 공간이 넓고 사람도 많으니 호수가 좀 더 상대방의 입과 표정에 집중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현장 공간의 크기를 고려, 섬세하게 캐릭터를 완성한 비결을 귀띔했다.
“(다른 쪽 귀에 돌발성 난청이 온 엔딩 장면) 대본에는 ‘혼란스러워하는 호수’로 적혀있었다. 그 장면은 명확했다. 무서웠을 거다. 무서움이 가장 큰 감정이었다. 처음에는 감정을 크게 가져갔는데 감독님이 조금 줄여보자가 해서 정제된 감정으로 방송 됐다. 정말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촬영했다”라고 제작진에게 마음을 표현했다.
시청자들은 캐릭터에 완벽 체화한 박진영을 칭찬했지만, 정작 본인은 “호수와 비슷한 점을 굳이 하나 고르자면 참을성과 인내심이다. 나는 입이 간지러워서 호수처럼 있지 못한다. 나와는 너무 다르다. 난 서론도 길고 본론도 긴 스타일인데(웃음)”라며 이호수만의 매력을 언급했다.
“호수는 보면 볼수록 좋은 사람이다. 사골 같다. 숨으려고 하는데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쳐다볼 것 같은 친구. 변호사라 말이 많지만 이상하게 말수가 적다고 느껴졌다. 묘하게 끌려서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대사량이 많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이호수는 말수가 적은 인물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연기를 했다.”
뿐만 아니라 유미지(박보영 분), 김로사(원미경 분), 이충구(임철수 분), 염분홍(김선영 분)과의 관계 안에선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며 작품의 큰 축으로 자리했다.
▲ 배우 임철수에게는 ‘믿음’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다고. “현장에서 ‘연기가 잘 안 풀린다’고 하자 ‘네가 호수야’라면서 불안한 나를 많이 다독여주셨다. 앞서 선배님이 인터뷰에서 내 칭찬을 해주신 기사를 읽었다. ‘감사하다’라고 연락을 했더니 ‘내가 느낀대로 이야기한 거야’라고 하시더라. 아무래도 최근에 태국 공연을 다녀오면서 선물로 위스키를 사드렸더니 칭찬을 해주신 것 같다.”
‘이기는 게 최우선’이라는 이충구의 대사에 대해선 “나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결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일은 혼자 완성할 수 없고, 어찌됐든 조금 더 많은 분들이 봐주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지의 서울’을 하면서 느꼈던 건 ‘진심’이었다. 진심이 통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 우리가 진심으로 임해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가치관을 공유했다.
▲의붓엄마 역의 배우 김선영과는 11회에서 눈물로 진정한 가족이 된다. “11부 대본만으로도 그 장면이 정말 슬펐다. 현장에서도 ‘너무 기대된다’라고 해서 부담이 컸었다. 아니나 다를까 초반에 감정이 너무 안 나와서 호수처럼 혼자 땅굴을 파고 있었다. 그런데 김선영 선배가 ‘나만 보라’고 ‘느끼기만 하라’고 해주셨다. 그때 내 상황이 호수와 맞닿아 있음을 알았다. 염분홍이 길 잃은 호수의 길잡이가 되듯이 연기를 함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나왔다. 선배님 너무 감사했다고 꼭 말하고 싶다.”
실제론 어떤 아들인지 묻자 “엄마가 소녀 같으시다. 나름대로 사랑한단 말을 자주 하려고 하고 포옹도 한다. 그래도 불효자인 것 같다”라고 해 사랑둥이 효자임을 짐작케 했다.
▲배우 박보영과는 친누나와 동명이인이라는 특별한 내적 친밀감이 있었다. “친누나 이름이 박보영이다. 그래서 배우 박보영한테 몇 대손, 무슨 파인지까진 물어봤었다. 그런데 혹시나 내가 삼촌이거나 할아버지일까봐 족보가 꼬일까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라며 “내 핏줄 박보영 누나는 성격이 부드러운 유미래(박보영 분) 같다. ‘잘했네’ 이 말이 극찬인 사람이다. 누나가 두 명인데 핏줄 박보영 말고 또 다른 친누나는 본방사수를 인증하는 사진을 보내주면서 응원해줬다”
끝으로 “드라마가 큰사랑을 받고 종영해 기분이 좋다. 촬영할 때는 우리끼리 공감하고 위로 받았는데 이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하다”라며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핸디캡이 있지만 누구보다도 더 마음을 들으려고 하는 인물이 이호수였다. 연기를 하면서도 상대 배우를 잘 들으려고 했고 어느 순간 내가 듣고 있더라. 나는 인복이 있다. 좋은 분들과 작업을 많이 해왔는데 이번에도 많은 걸 배운 현장이었다. 화면 속 내 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민이 많기도 하지만 가끔씩 ‘괜찮다’ 느끼는 장면이 있어서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다. 앞으로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연기를 하고 싶어졌다.”
전효진 동아닷컴 기자 j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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