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 전망 아랑곳 않는 코스피 상승
반도체 ‘칩플레이션’이 높인 명목 성장률
재정 지출·반도체 성과급이 유동성 키워
증시 꺾일 경우 부동산으로 흘러갈 수도
그럼에도 금리 인상을 부르는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신호는 뚜렷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금리 인하 특명’을 받고 지명된 것이나 다름없는 케빈 워시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조차 연내에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작년 동월 대비 3.8% 상승한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는 2023년 5월 이후 최고치다. 정부의 국채이자 부담 증가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본은행조차 30년 9개월 만에 1%대 금리로 복귀할 태세다.
2일 나온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3.1%도 2년 2개월 만에 최고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중동 사태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이 주요 원인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인플레와 관련한 통화정책을 조정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적다고 할 수 있다”면서 7월 열릴 다음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높였다.
그런데 이번 한국의 인플레가 상당히 특이하다.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유가 인플레와 이득이 되는 반도체 ‘칩플레이션’이 동시에 찾아왔다. 이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실질’ 경제성장률과 ‘명목’ 경제성장률의 큰 차이다. 최근 한은이 높인 올해 ‘실질’ 성장률 전망치는 2.6%.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대외 여건의 어려움에도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성장하면서 올해 ‘명목’ 성장률이 10%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한다.실질 성장률은 명목 성장률에서 가격 요인을 배제한 것인데, 반도체 수출물가와 국제유가가 동시에 오르면서 그 격차가 7%포인트 이상 벌어지게 됐다. 화폐로 표시되는 명목 성장률 상승은 국가부채 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국가부채 계산 때 분모는 화폐로 표시된 명목 국내총생산(GDP), 분자는 부채의 규모다. 이재명 정부로선 국가부채 비율 증가를 문제 삼는 이른바 ‘포퓰리즘적 긴축재정론’의 공세를 벗어나 재정 지출을 더 늘릴 여지가 생긴다.
문제는 이제 본격적으로 인플레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풀린 돈과 풀릴 돈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올해 정부 본예산은 작년 본예산보다 54조7000억 원 증가한 ‘슈퍼 확장예산’이었다. 중동 전쟁을 계기로 26조2000억 원의 ‘전쟁 추경’이 더해져 올해 정부 지출은 753조 원까지 불어났다. 게다가 정부 계획보다 더 걷힐 것으로 보고 추경에 반영한 법인세, 증권거래세 세수 증가보다도 수십조 원의 세금이 더 걷힐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 밖에서도 돈이 풀린다. 파업을 막기 위해 삼성전자가 노조에 약속한 성과급은 약 35조 원. 3년에 나눠 주식으로 준다지만 벌써 주변 상권이 들썩인다고 한다. 올해 초 SK하이닉스 직원들은 4조7000억 원의 성과급을 현금으로 나눠 받았는데, 내년에는 규모가 2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은이 최근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높이면서 “임금이 구매력 증가를 통해 수요를 키우면 그만큼 물가 압력이 생긴다”고 지적한 게 이런 돈 풀기다. 아직은 정부 의도대로 불어난 유동성의 상당 부분이 증시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코스피 상승세가 꺾이기라도 한다면 어디로 이 돈이 흘러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통근 셔틀버스가 운행되는 경기 화성시 동탄구, 용인시 수지구·기흥구 등 ‘셔세권’ 아파트값이 벌써 들썩인다고 한다. 삼성전자 노사가 연 1.5% 금리로 5억 원까지 빌려주는 주택대출 제도를 신설하자, SK하이닉스 직원들도 1억 원인 사내대출 한도를 높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유동성이 다시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부문으로 복귀하는 ‘역(逆)머니무브’를 정부가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적극 재정’을 정부의 의무로 강조해 온 이재명 정부는 이제 과도한 유동성과 씨름해야 한다. 너무 많이 걷힐 세금을 어디 쓸지 고민하는 건 글로벌 금리 상승기에 맞지 않는다. 북해 유전이 터진 초기에 인플레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결국 국부펀드를 만들어 미래에 투자하면서 유동성을 ‘격리’한 노르웨이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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