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은 아직 위험해’라는 생각을 강화시키는 두 사건. 하지만 오히려 웃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통하는 라이다(LiDAR) 업계인데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바보들이나 쓰는 장치”라고 폄하했던 라이다가 암흑기를 벗어나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자율주행차와 로봇 시대에 주목할 기술, 라이다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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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의 눈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 레이저 빔을 360도로 발사해 주변 환경을 정확하고 빠르게 3차원으로 감지하는 센서를 말합니다. 빛의 속도는 일정하니까(2억9979만2458m/s), 레이저가 물체에 부딪힌 뒤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을 이용하면 거리를 알아낼 수 있죠.라이다는 최신형 가정용 로봇청소기의 핵심부품이고요. 애플 아이폰에도 들어갑니다. 라이다 스캐너가 야간 인물사진을 더 또렷이 촬영할 수 있게 해주죠.
2020년 80개 넘게 있던 전 세계 차량용 라이다 업체 중 살아남은 곳은 이제 20곳이 채 되지 않습니다. 혹한기를 버티고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상처가 적지 않죠. 1995년생 창업자 오스틴 러셀을 한때 ‘최연소 억만장자’로 만들며 화려하게 상장했던 미국 라이다 제조사 루미나. 하지만 2020년 12월 717달러를 찍었던 주가는 현재 3.63달러입니다. 주가 변동률이 무려 -99.5%에 달하죠. 이스라엘 기업 이노비즈 주가 역시 비슷한 수준이고요(2020년 12월 15.5달러→현재 0.72달러).
200달러 라이다의 등장
로봇공학 박사 출신 창업자가 각각 이끄는 두 기업. 그 기술력을 두곤 논란도 있었습니다. 2019년 미국 벨로다인이 두 회사가 자기네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넨 적이 있죠. 미국 의회조사국은 “일부 중국기업이 미국의 라이다 지식재산권을 확보하기 위해 의심스러운 관행을 사용해 왔다”고도 지적하는데요.
이들 기업의 성장을 가속화한 건 중국 정부의 지원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미 10년 전에 ‘2025년까지 자율주행의 핵심기술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목표를 잡았고요. 이를 위해 규제를 낮추고, 인프라를 갖추고,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정책을 줄줄이 내놨거든요.
2016년 당시 미국 벨로다인의 차량용 라이다 가격은 1억원(7만5000달러)에 달했고요. 2020년만 해도 라이다 하나에 1000만원(7500달러) 정도 됐는데요. 지금은? 허사이의 차량용 라이다 센서 가격은 고작 28만원(200달러)입니다.
루미나·이노비즈 같은 해외 경쟁업체 제품 가격은 500달러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죠. 중국산 가격이 절반 이하인 건데요. 이렇게 내려간 가격은 다시 수요 창출로 이어집니다. 중국 전기차 기업 BYD는 얼마 전 전 차종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한다고 선언해 라이다 붐을 예고했고요. 이젠 차값이 2500만원(13만 위안)인 립모터 전기 SUV ‘B10’에도 라이다가 장착됩니다. 비싸서 라이다 못 쓴다는 말이 옛날얘기가 되어버린 겁니다.
라이다 VS. 카메라
라이다냐 카메라냐. 자율주행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오랜 논란에 대해 들어봤을 겁니다. 대부분 완성차 업체가 자율주행을 위해 라이다를 채택했지만, 유독 이를 거부하고 다른 길을 간 기업이 있죠. 바로 테슬라인데요.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라이다 진영을 향해 혹독한 비판을 퍼부어 왔습니다. 2019년 그가 한 말은 지금도 회자되죠. “라이다는 바보짓(a fool’s errand)입니다. 라이다에 의존하는 곳은 망할 거예요. 망한다고요. 불필요하고 값비싼 센서들.”
머스크는 모든 테슬라 차량에서 라이다를 쓰지 않고요. 원래 있었던 레이더 센서와 초음파 센서까지 제거했습니다. 카메라에만 의존하는 순수 비전 방식을 채택한 거죠. 인간이 시각에 의존해서 운전한다면 기계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게 머스크의 주장인데요.
그리고 무엇보다 비용도 큰 이슈였습니다. 카메라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에 몇만 원 수준. 차량 한 대에 8개씩 달아도 수십만원에 불과했죠. 몇 년 전만 해도 경제성에선 테슬라 방식이 월등히 앞선 겁니다.
하지만 라이다 가격이 급격히 무너진 지금, 얘기가 좀 달라지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카메라를 이용한 비전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면서 사람이 운전하는 것 못지않은 자율주행을 선보이곤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라이다를 살짝 추가한다면? 아주 조금은 더 안전해지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라이다 한두개쯤 추가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제 라이다가 별로 비싸지도 않은데.
이게 바로 라이다 진영이 요즘 내세우는 논리입니다. 허사이 창업자인 리이판 CEO는 라이다가 “보이지 않는 에어백”이 되었다고 설명하죠. 라이다의 개념이 “고급 기능 부품”에서 “표준 안전 사양”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의 과학 유튜버 마크 로버가 지난달 올린 테슬라 가짜 벽 통과 실험 영상은 라이다 진영 논리를 강화하죠. 실험에서 라이다는 가짜 벽을 인식하고 차량을 멈추게 했지만, 카메라만으로 인식하는 테슬라 차량은 벽을 뚫어버렸습니다. 짙은 연기와 심한 비가 시야를 가리는 상황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났죠. 시각 데이터만으론 만일의 돌발 상황까지 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데요.(물론 이 실험의 정확성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SU7 기본형엔 라이다 없이 카메라만 이용하는 운전자 보조시스템이 장착됐단 사실이 이후 알려졌고요(더 비싼 SU7 프로, SU7 맥스 모델에만 라이다가 탑재). 이로 인해 이 사고가 중국 라이다 업체엔 기회라는 분석이 나오게 됩니다. 카메라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고 라이다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거죠.
10년 만에 돈 버는 라이다
이제 라이다 시장에서 서방 업체는 영 힘을 못 쓰고요.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중국 기업이 휩쓸고 있습니다. 시장조사 업체에 따르면 자동차용 라이다 시장에서 중국 업체 점유율은 90%에 육박합니다. 매출 기준 세계 1, 2위인 허사이와 로보센스 모두 지난해 라이다 판매량이 전년보다 100% 넘게 급증했죠(허사이 50만대, 로보센스 54만대). 허사이는 올해 판매량이 지난해의 3배인 150만대일 거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부분. 드디어 돈도 벌기 시작합니다. 허사이는 지난해 연간으로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는데요. 2014년 설립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고요.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자동차용 라이다 전문 기업 중 첫 흑자 전환이라고 하죠.
흔히 중국 기업끼리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다 보면 ‘제 살 깎아 먹기’이 되곤 하는데요. 그런데 중국 라이다 시장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 대중적인 저가품만이 아니라, 돈 되는 고급 제품 수요도 함께 커져서죠. 무인 로보택시와 로봇에 쓰이는 라이다가 이런 고수익 제품인데요.
중국을 넘어 두바이까지 진출하는 바이두의 무인 로보택시 ‘아폴로고’ 차량. 거긴 허사이 라이다가 탑재되고요. 지난 설날 단체로 춤을 춰서 전 세계에 화제가 됐던 중국 로봇기업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 ‘G1’. 여기엔 로보센스 라이다가 들어갑니다. 성장하는 첨단 산업에 라이다 기업들이 제대로 올라탄 겁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 시장으로 보면 신차 중 라이다가 장착되는 건 고작 1% 정도. 여전히 완전 초기 단계인데요. 그렇다면 아직은 후발주자에게도 기회가 있는 셈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By.딥다이브
‘라이다 가격이 200달러 수준이 되면 대중화 될 수 있다’. 이런 얘기가 10년 전쯤부터 있었죠. 그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이렇게 와버리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자율주행의 꽃’ 라이다(LiDAR). 하지만 각광 받던 미국과 유럽의 라이다 기업들은 지난 몇년의 혹한기를 거치며 존재감이 희미해졌고요. 그사이 몰라보게 커진 건 중국 제조사들입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세계시장을 휩쓸게 된 중국 기업들. 차량용 라이다 가격을 200달러까지 떨어뜨리며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보이는데요. 이제 메르세데스-벤츠도 중국산을 채택할 정도가 됐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라이다는 바보나 쓴다”고 했었죠. 하지만 가격이 이렇게까지 급락하면서 분위기가 좀 달라지는데요. 무인 로보택시나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시장 수요는 점점 커지는 상황. 첨단 기술로 나아가려면 이제 라이다를 다시 들여다봐야 겠습니다.
*이 기사는 4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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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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