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만 100억… 급매로 내놔도 잘 안 팔려
이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A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200억 원 지방 땅을 그대로 상속받으면 그 집안은 망할 것이다. A뿐 아니라 3남매가 모두 같이 망할 수 있다.”
상속세 체납자들의 말 못 할 고민
A는 상속세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할 때면 주로 문제가 되는 사람은 운영하는 기업이 상속세 때문에 다른 이에게 넘어갈 처지에 놓인 사업가뿐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니면 “상속세 때문에 망한다”는 말을 그저 엄살로 치부했을 테다. 200억 원 중 100억 원을 세금으로 내도 절반이 남지 않나. 100억 원이면 여전히 엄청난 부자 아닌가. 100억 원이나 남는데 상속세가 많다고 요란을 떠는 사람은 그냥 욕심 많은 불평쟁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크다.
평범한 집안에서 현금 100억 원을 갖고 있을 리 없다. 상속세를 10년간 분할납부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분할납부한다고 해도 당장 내야 할 10분의 1이 10억 원이다. 3남매가 3억3000만 원씩 부담해야 한다. 3억 원 넘는 돈을 현금으로 갖고 있는 사람도 진짜 부자가 아니고선 잘 없다. 남매 중 한 명쯤은 돈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속세는 연대 책임이다. 나머지 2명이 내지 못한 것도 다른 한 명에게 부담으로 돌아간다. 10억 원 전액을 낼 때까지 계속 고지서가 날아오고, 내지 못하면 세금 체납자가 된다. 이런 일이 10년간 계속될 것이다.
가끔 언론에 “누가 몇십억 원 세금을 체납했다”는 보도가 나오면 “세금 떼어먹은 나쁜 놈”이라고 비난했을 것이다. 돈이 있으면서도 숨기고 세금을 내지 않는 나쁜 놈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A의 가족이 세금 100억 원을 내지 않은 탈세자가 될 처지다. ‘탈세자=나쁜 놈’이라고 생각해왔을 텐데, 그 인식이 조금은 바뀔 것이다.
상속 급매가 경매보다 나은 이유A의 가족이 탈세자가 되지 않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200억 원 땅을 바로 팔아서 상속세를 낼 현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A는 아마 200억 원 땅이 금방 팔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제값에는 안 팔릴 수 있어도, 10%가량 싸게 내놓으면 가능할 거라고 본다. 하지만 200억 원에서 10%를 빼도 180억 원이다. 100억 원 세금을 내면 80억 원이 남고, 이걸 3남매가 똑같이 나누면 27억 원이 된다. 그 정도만 돼도 충분하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시세보다 10%가량 싸게 내놨을 때 금방 팔리는 건 아파트뿐이다. 다른 부동산은 20% 싸게 내놔도 쉽게 팔리지 않는다. 게다가 100억 원이 넘는 건 정말 팔기가 힘들다. 대도시 건물도 아니고 지방 땅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절대 안 팔린다.
상속세는 6개월 안에 내야 한다. 이 말인즉슨 200억 원짜리 땅을 6개월 안에 팔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 체납자가 되고 재산이 압류된다. 그러니 급매로라도 내놓아야 한다. 몇십%를 싸게 팔더라도 무조건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싸게 내놓는다고 해도 몇억 원이면 모를까, 몇백억 부동산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하루빨리 팔아야 하는 사람만 있으니, 이 경우 절대적인 매입자 우위 시장이 된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이런 매물을 노리는 것이다. 상속세를 내려고 급매물로 내놓은 걸 잡는 방법이다. 경매가 돈이 된다고 하지만, 경매로 싸게 산들 20% 할인되는 정도다. 상속 급매는 경매보다 훨씬 싼값에 매물을 살 수 있다. 아파트는 시세보다 그리 싸지 않다. 그러나 몇십억, 몇백억 원이 넘는 건 얘기가 다르다. 그 정도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리 싸게 내놔도 살 사람을 찾지 못한다. 이에 보통은 “이렇게 싸게 파느니 그냥 갖고 있겠다” 하고 제값에 살 사람이 나올 때까지 몇 년을 기다린다. 하지만 몇 개월 안에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버틸 수가 없다. 가격을 후려쳐서라도 팔아야 한다. 부동산시장에는 이런 상속 급매만 노리는 사람들도 있다. 시세보다 몇십억 원 싸게 사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지난해 서울 강남에서 건물 한 개 층이 상속 급매로 나왔다. 시세가 60억 원 이상 되는 알짜 부동산이었다. 하지만 상속세 문제로 빨리 팔아야 했고, 40억 원에 매매됐다. 평상시라면 절대 그 가격에 거래되지 않는다. 그러나 파는 사람도 60억 원짜리 건물에 해당하는 상속세 25억 원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30% 이상 할인된 40억 원으로라도 팔아서 정리해야만 했다.
다시 A의 경우를 보자. A가 상속받을 부동산은 200억 원쯤 되는 지방 땅이다. 이걸 상속 급매로 얼마에 팔 수 있을까. 서울 강남 건물도 상속 급매로 33% 할인해 팔아야 했다. 지방 땅은 그것보다 훨씬 싸게 내놓아야 팔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그럼 매입자 관점으로 전환해보자. A가 50% 싸게 땅을 판다고 해도 100억 원이다. 내게 100억 원 자금이 있다고 할 때 지방 땅을 살 것인가, 아니면 서울 요지의 빌딩을 살 것인가. A의 땅이 서울 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같은 서울이어도 강남 등 요지가 아닌 이상 100억 원대 부동산은 팔리기 힘들다. A의 땅은 50% 할인하더라도 몇 개월 안에 팔리기 힘들 것이다.
가치가 200억 원인 기업을 상속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억 원 가치의 기업이면 연 10억 원가량 이익을 내고 있을 것이다. 해마다 10억 원을 버는데, 상속세로 100억 원을 내야 한다. 그러면 상속세를 낼 수 있나. 5000만 원 연봉을 받는 사람이 세금으로 5억 원을 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아무리 기업가치가 200억 원이어도 세금 100억 원을 낼 돈은 없다. 이때 상속세를 내려면 기업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이걸 누가 사나. 상장사라면 주식을 내놨을 때 살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상장 중소기업을 살 사람은 정말 찾기 힘들다. 200억 원 부동산을 100억 원에도 팔기 힘든 것처럼, 200억 원 가치의 기업도 100억 원에 팔기 힘들다. 100억 원에 팔리면 상속세 100억 원을 내면 끝이다. 땅이든, 기업이든 전부 다 날아간다. 그런데 만약 100억 원에도 팔지 못한다면? 200억 원 가치의 땅이나 기업을 100억 원에 내놓았는데, 그래도 팔리지 않는다면? 그러면 꼼짝없이 고액 세금 체납자 명단에 오른다. 상속받은 재산뿐 아니라 자기 재산까지 압류될 수 있다. 압류된 땅은 더 팔기가 어렵다.
상속세로 평생 모은 돈 쓸 수도
A의 땅이 80억 원 정도에 팔린다면 상속세 낼 돈 20억 원이 모자란다. 그러면 3남매가 이 돈을 메워야 한다. 인당 7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데,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고 평생 저축한 돈을 토해내야 할 것이다. 그동안 A는 상속받아 망한다는 얘기가 그야말로 엄살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하지만 ‘정말로’ 상속 때문에 망할 수도 있다. 상속세를 준비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현금화할 수 없는 고액의 재산을 물려받을 경우 큰 난관에 봉착한다.
A는 상속만 받으면 몇십억 부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대로 상속된다면 A의 가족은 망한다. 온 가족이 달려들어 준비해야만 다가올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86호에 실렸습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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