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 맞이하는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 있다. 작가 정수경은 10년 전 한 대나무 숲에서 ‘예술적 세례’를 경험했다. 숲에서 맞닥뜨린 어떤 소리는 간절히 찾아 헤매던 예술세계의 실마리를 던졌다. 그 소리는 산자락을 한 바퀴 돌아 나온 한 줄기의 바람이 낸 것이다. 시간의 능선을 거슬러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할 만큼, 상쾌한 날 것의 내음을 풍긴 이 바람은 ‘자연의 언어’를 찾아보라고 속삭였다. 그가 자연에서 영성(靈性)을 찾는 작품을 그리게 된 이유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정수경의 개인전 ‘스며들다 떠오르다’는 작가가 치열하게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존재들을 탐미한 끝에 찾아낸 아름다움을 펼쳐낸 전시다. 대숲과 바람에서 영감 받은 400호 크기의 대작 ‘청음(淸音)’을 비롯해 떨어진 꽃 잎 위로 또 다른 꽃 잎이 지며 쳇바퀴처럼 흘러가는 계절의 순환을 그려낸 ‘피어나다’와 ‘떠오르다’ 연작, 별을 소재 삼은 근작 ‘아니마(Anima)’ 등 30여점이 걸린다.
캔버스 바닥에 놓고 물감을 떨어뜨리는 작가 특유의 드리핑 방식이 돋보인다. 캔버스에 붓으로 물감을 흩뿌리는 반복적 행위는 작가가 만났던 바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드리핑만의 듬성한 공간창출에서 바람이 내는 미세한 소리가 어우러진다. 꽃에서 꽃으로 나비가 팔랑대며 날아가는 모습이나, 들판에 홀로 고고하게 서 있는 매화가 떠오르는 그림들은 봄이 찾아온 5월과 잘 어울린다. 전시는 6월2일까지.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