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 109점 속 보물찾기… ‘달나라 토끼’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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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

19세기 그려진 ‘호작도(虎鵲圖·호랑이와 까치 그림)’. 민화로 사랑받은 호작도는 액막이, 길상 등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19세기 그려진 ‘호작도(虎鵲圖·호랑이와 까치 그림)’. 민화로 사랑받은 호작도는 액막이, 길상 등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졌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제공
짙푸른 배경의 서가에 즐비하게 놓인 책과 붓, 벼루, 세밀한 문양의 화병 등을 담은 그림. 단정히 놓인 물건들은 또렷한 색감과 재치 있는 배치 덕에 따분하기보다 활기찬 느낌을 선사한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27일 개막한 ‘조선민화전’ 도입부를 장식하는 조선시대 궁중 화원 이택균(1808∼1883 이후)의 작품 ‘책가도10폭’이다. 이택균은 ‘책가도의 대가’로 잘 알려진 인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이 작품을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손에 넣었다. 경쟁 끝 낙찰가는 64만2600달러(약 9억4500만 원·수수료 포함). 뉴욕의 저명 미술품 수집가이자 디자이너였던 미카 에르테군이 집에 걸어뒀던 그림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소장품 외에도 전국 19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받은 109점의 민화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 민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을 아우른다. 도자기와 직물, 목가구 등 민화가 그려진 공예품도 선보인다.

전시에선 궁중 화풍으로 시작한 민화가 민간에 확산하면서 다채롭게 변화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책가도10폭’ 옆에는 작자 미상의 8, 12폭 책거리 병풍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림에서 서가는 사라지고 여러 물건만 남았다. 현문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학예팀장은 “궁중 회화였던 책가도가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책장이 사라지는 경향을 보인다”며 “천장의 높이가 낮은 민가에 놓이면서 병풍의 크기도 그에 맞춰졌고, 그림 속 물건도 점차 (외래품에서) 토착품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책가도 외에도 문자도, 화조도, 산수화 등을 폭넓게 아울렀다. 단아하고 정교한 작품과 화려하고 익살맞은 작품을 리듬감 있게 구성함으로써 ‘질박하거나 촌스럽다’는 민화에 대한 편견도 깬다. 조선 말기 화가 윤오진(1819∼1883)이 그린 ‘어해도(魚蟹圖)12폭병풍’은 사실적이고 섬세한 물고기 묘사가 돋보인다. 작자 미상의 ‘금강산도8폭병풍’은 금강산 명승지를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기하학적으로 표현해 자유분방한 민간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보물찾기하듯 화폭 곳곳에 숨은 도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교의 여덟 가지 덕목을 한 글자씩 쓴 뒤 그림으로 글자를 장식한 ‘문자도8폭병풍’에는 열심히 방아를 찧는 달나라 토끼가 숨어 있다. 6월 29일까지.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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