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 간 ‘미식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미쉐린 스타를 받은 유명 맛집을 단독 유치하고, 리뉴얼을 통해 그로서리(식품관)를 강화하고 있다. 수백만원짜리 와인을 글라스 단위로 마실 수 있는 와인 바를 들이기도 한다. 불황 속 오프라인 집객 효과를 높이고, 백화점에서 장을 보는 VIP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아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압구정 본점 식품관에 글라스 와인 바를 열었다. 레스토랑에서 마시면 한 병당 수백만원이 넘는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샤토 라투르’ 등 최상급 와인을 한 잔 단위로 주문할 수 있다. 샤토 라피트 로칠드는 한 잔에 8만9000원, 샤토 오브리옹은 7만7000원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난달 시범적으로 5대 샤토 와인을 글라스 단위로 판매했는데 반응이 좋아 상시 운영하기로 했다”며 “샤토 5종 와인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서 현대백화점뿐”이라고 말했다.
현대백화점은 압구정 본점 슈퍼마켓 콘텐츠와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한 끼 단위로 장을 보는 소비자를 겨냥해 미니 카트를 도입하고, 전문 셰프가 즉석에서 수산물을 조리해 조림과 탕 형태로 제공하는 등 VIP를 위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은 식품관 리뉴얼 전략을 내세웠다. 지난 2월 재단장한 강남점 식품관 ‘신세계마켓’이 대표적인 예다. 신세계마켓은 국내 신선 식재료는 물론이고 트러플·푸아그라·캐비아 등 수입 식재료까지 갖춘 프리미엄 슈퍼마켓이다. 전략은 통했다. 3월 신세계마켓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늘고 방문객은 40만 명에 달했다.
롯데백화점은 유명 맛집을 잇달아 들이고 있다. 이달 초 롯데월드몰에 미쉐린 빕 구르망 레스토랑으로 선정된 평양냉면 전문점 ‘서령’을 유통사 가운데 처음으로 입점했다. 오는 15일에는 롯데백화점 본점에 미쉐린 빕 구르망에 선정된 일식 우동점 ‘현우동’을 단독 입점할 예정이다. 베트남 음식 전문 레스토랑 ‘포브라더스’도 다음달 잠실점에 단독으로 들인다.
백화점들이 미식 전쟁을 벌이는 것은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해 집객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맛집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이 증가하면 백화점의 다른 상품 매출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식품관 강화는 핵심 고객인 VIP를 잡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경기 침체 여파로 중산층은 백화점에서 명품 소비를 줄이고 있지만 고소득층은 여전히 백화점에서 쇼핑한다. 국내 주요 백화점 연 매출에서 VIP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20년 38%에서 지난해 45%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은 35%에서 45%로, 신세계백화점은 30%에서 45%로 확대됐다.
백화점 관계자는 “부촌 지역 VIP는 명품 쇼핑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장보기를 할 때도 백화점을 애용한다”며 “1~2인 가구 증가, 미식 취향 고급화 경향으로 백화점뿐만 아니라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미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성공을 거둬 미식 열풍이 이어지는 것도 식품관을 강화하는 배경이다. 흑백요리사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가 지난달 12일 재개장한 레스토랑 모수는 개점 직후 3개월 치 예약이 모두 찼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