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의 지금은 글로벌] 2026년 새해 첫 주, 보스턴의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하나의 분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미국투자이민은 더 이상 개인의 자산 이전이나 영주권 취득을 위한 수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국가와 도시가 직면한 구조적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보스턴은 이미 그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하고 있었다.
미셸 우 보스턴 시장 취임식에 공식 초청을 받아 참석하고 보스턴 주택청과의 미팅을 통해 확인한 것은 안정적인 EB-5 프로젝트 하나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저소득층 주거 문제 해결과 해외 자본 유치를 하나의 구조로 엮어낸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 이른바 ‘공공 투자이민’이라는 개념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민간 개발을 보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공공이 직접 설계한 정책 시스템에 글로벌 자본을 결합한 모델이었다.
보스턴 벙커힐 공공주택 재개발 프로젝트는 기존 민간 개발형 미국투자이민 프로젝트와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 사업은 보스턴시와 보스턴 주택청이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는 공공 인프라 사업이다. 노후 공공임대주택 약 1100호를 철거하고 2699호의 혼합 소득 주택을 새로 짓는 대규모 재개발이지만, 이 프로젝트의 본질은 규모가 아니라 구조에 있다. 사업의 성패를 분양률이나 민간 개발사의 역량에 맡기지 않고, 공공의 지속성과 책임성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에서 기존 EB-5 프로젝트와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자금 설계 방식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미셸 우 시장이 2024년 11월 발표한 ‘Housing Accelerator Fund’가 투입된다. 보스턴시가 자체 재정으로 직접 조성한 1억 1천만 달러 규모의 기금이다. 더 중요한 점은 이 자금이 일회성 예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로젝트 완공 후 발생하는 공공임대료 수입은 시정부로 환수되고, 이 자금은 다시 다른 공공주택 사업에 재투자된다. 자본을 소진하는 방식이 아니라, 회전시키는 구조다. 공공주택을 비용이 아닌 금융 구조로 설계한 정책적 선택이다.
주거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민감한 정치·사회적 이슈다. 보스턴은 이 문제 앞에서 정부가 주인이고, 정부가 책임지며, 정부가 자본의 흐름을 관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공성은 선언이 아니라 설계된 구조로 구현되고 있었다.
보스턴 주택청과의 대화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미국 공공기관의 태도였다. 그들은 ‘안전하다’라는 추상적인 표현에 기대지 않았다. 대신 투자자의 시각에서 질문을 세분화하고, 그 질문에 구조로 답했다. 토지 소유와 운영 주체가 시정부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민간 개발사의 부도나 시행 리스크는 구조적으로 제한된다는 점, 공공임대료는 정책적 틀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시장 변동성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점, 그리고 시정부뿐 아니라 주·연방 정부 정책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리스크가 한 기관에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공공기관의 ‘세일즈’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됐다. 그것은 과장이 아니라 정책을 투자자의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었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감정적 설득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보스턴에서 체감한 현실은 분명하다. 주택 가격과 임대료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의 주거 불안은 도시의 핵심 정치 의제가 되고 있다. 보스턴시는 이 문제를 시장에만 맡기지 않았다. 공공임대주택을 직접 공급하고, 그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 자체를 혁신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투자이민은 ‘부자들의 영주권 통로’가 아니라, 주거 정책을 실행하는 재원 조달 장치로 재정의된다. 이민정책과 주거정책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정책 목적을 다른 정책의 도구로 연결한 것이다.
이 모델의 핵심은 명확하다. 공공이 필요한 영역에 공공이 개입하되, 부족한 자본은 민간과 해외에서 조달하고, 그 운용은 공공의 규율로 통제한다는 점이다. ‘공공은 비용’이라는 오래된 관념을 깨고, 공공을 회전하는 자본으로 설계한 접근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역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수도권 주택 공급 압박, 공공주택 재원 부담, 지역 간 미분양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공 인프라와 주거 재원을 해외 자본과 결합해 조달할 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이다. 공공 투자이민 모델은 국익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를 제시한다. 정부가 직접 소유·운영하는 공공 프로젝트에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그 자본이 다시 공공 영역으로 환수되는 구조를 만든다면, 이는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보스턴에서 돌아오며 더 분명해진 생각이 있다. 미국투자이민을 ‘영주권을 돈으로 사는 제도’라는 단일한 프레임에 가두기에는 시대가 이미 달라졌다는 점이다. 공공 투자이민이 보여주는 핵심은 단순하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공공 프로젝트에 글로벌 자본을 유치하되, 그 운용은 공공의 원칙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주거, 인프라, 지역 균형, 재정 부담이라는 한국 사회의 과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답이 쉽지 않을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예산이 아니라 더 정교한 설계다. 투자자의 불안을 이해하고, 그 불안을 구조로 해소하며, 책임을 재정과 운영으로 증명하는 태도, 그것이 보스턴에서 본 공공의 힘이었다. 내가 보스턴에서 느낀 것은 안전한 프로젝트 하나가 아니라, 공공의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는 정부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이 도시는 작지만 강하고, 그래서 더 부럽다.
[김지영 객원칼럼니스트(국민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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