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폭탄’ 미국 탈출해 업무 계속
같은 연봉으로도 여유로운 일상 즐겨
세금도 면제받는 ‘지리적 차익 거래’
훗날 ‘미국 복귀 비용’은 숙제로 남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거주하는 니노 트렌티넬라(46)는 지난 2년간 이곳에서 미국 중상류층 수준의 화려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어린 시절 볼티모어로 이주했던 그녀는 2년 전 고국인 조지아로 돌아와 원격 근무를 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선택했다.
트렌티넬라 씨의 연봉은 4만 달러(약 5400만 원) 미만으로, 미국 기준으로는 평범한 수준이다. 하지만 트빌리시에서 이 수입은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그녀는 주 2회 가사 도우미를 부르고, 거의 매일 택시를 이용하며, 지역 맛집에서 외식을 즐긴다. 미국 본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유다. 그녀는 “미국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누리지 못하는 6개월간의 유급 출산 휴가를 가졌고, 요리사와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았다”며 현 생활에 대한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삶이 가능한 이유는 이른바 ‘지리적 차익 거래(Geographic Arbitrage)’ 덕분이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녀는 해외 근로 소득 공제(FEIE) 제도를 통해 연간 소득 중 약 13만 달러까지 미국 세금을 면제받는다. 여기에 조지아 정부의 원격 근무자 우대 정책 덕분에 현지 소득세는 단 1%만 내면 된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 뒤에는 ‘은퇴 걱정’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프리랜서 교육자로 일하는 그녀는 아직 본격적인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미국 직장 생활과 달리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데, 은퇴 전망이 다소 막막하다”는 것이 그녀의 솔직한 고백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원격 근무를 선택해 ‘탈미국’을 선택하는 디지털 노마드족이 급속히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3년째 노마드 생활 중인 비디오 에디터 코리 오플래너건(43)은 동남아시아와 남유럽을 오가며 연간 약 7만 달러를 지출한다. 그는 자신의 현재 라이프스타일을 고향인 덴버에서 유지하려면 최소 12만 달러가 들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가 해외 거주를 고집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미국의 악명 높은 의료비다. 오플래너건 씨는 최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부부가 함께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다. 혈액 검사, 초음파, 1시간 이상의 의사 상담이 포함된 이 서비스에 지불한 금액은 1인당 400달러였다. 미국이었다면 수천 달러가 들었을 항목들이다. 그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정말 무섭다”며 “현재로서는 해외에서 은퇴하되, 일 년 중 몇 달만 가족을 보러 미국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노마드족의 급증이 2020년 팬데믹 이후 원격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특히 2024년 대선 이후 정치적 상황과 고물가에 지친 미국인들이 기록적인 숫자로 국외로 이주하고 있다. 해외 거주 미국인 협회(AARO)에 따르면 현재 약 550만 명의 미국인이 해외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저렴한 물가의 달콤함에 취해 치명적인 재무적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산 관리 전문가 피터 셍겔만은 “해외 근로 소득 공제를 통해 미국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경우, 과세 대상 소득이 없기 때문에 개인퇴직계좌(IRA)나 개인은퇴계좌(Roth IRA)에 납입할 자격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을 간과하는 이들이 많다”고 경고한다.
또한 자신이 머무는 국가의 지방세나 연금 납부 의무를 잊었다가 나중에 세금 폭탄을 맞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익이 발생하는 곳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잊은 채 거주 국가를 단순한 ‘체류지’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엑소더스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경제적 생존 전략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국의 치솟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떠난 이들에게 해외 생활은 풍요로운 삶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제적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트렌티넬라는 아이들의 교육과 노후를 위해 언젠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복귀 비용이 너무 높다”며 망설인다. 저렴한 물가를 찾아 떠난 이들이 마주한 역설은 ‘달러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고국이 가장 돌아가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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