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부지원청 ‘관계가꿈 지원단’
전문 교육 받은 학부모 상담사가 서로 입장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사건 80% 학폭위 개최 없이 해결
교육부-서울 6개 교육지원청서도 저학년 대상 관계회복 제도 운영
최근 일선 학교에서는 아이들 간 사소한 다툼이나 오해로 학폭위가 열리는 일이 잦다. 초등 교사 A 씨는 “과거에는 교사 지도를 통해 학급 내에서 조율되던 일들이 요즘은 학부모가 ‘참을 수 없다’며 학교에 학폭위 개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학교 업무 부담이 늘어날 뿐 아니라 아이들이 갈등을 스스로 해결해 보기도 전에 ‘처벌 중심’으로 사안이 정리되는 방식이 교육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학교 내 갈등 해결 방식이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교육 당국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서울시 북부교육지원청은 2023년 10월부터 ‘관계가꿈 지원단’을 운영하며 학생 간 갈등을 푸는 새로운 해법을 시도하고 있다.
● ‘무조건 학폭위’ 대신 사과·화해하는 법 배워
매칭이 되면 지원단 소속 상담사가 양측을 각각 만나는 ‘예비 상담’을 진행한다. 이후 예비 상담 결과를 바탕으로 서로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을 나누는 ‘본 상담’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거나 롤링 페이퍼를 쓰기도 한다. 그 결과를 담아 사과문이나 약속문도 작성한다.
지원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학부모 간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끼리는 싸운 뒤 이미 화해했는데, 부모 사이의 감정이 격화돼 학폭위까지 열리는 일이 빈번하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가벼운 다툼은 학부모들도 상대의 처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잘 지도받고 학교생활을 무사히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며 “이런 경우 관계가꿈 지원단의 도움이 크다”고 말했다.
● “상담으로 관계 회복된 아이들 보면 큰 보람”
관계가꿈 지원단의 특성은 상담을 진행하는 인력이 학부모라는 점이다. 지원단으로 선발된 학부모들이 전문 역량 강화 교육을 받고 상담자로 나선다. 역량 강화 연수는 지난해 4회, 올해 2회 진행됐으며 현재 총 19명의 학부모가 활동하고 있다.
지원단으로 활동하는 성나리 씨(48)는 “엄마이자 같은 학부모 입장이라 소통과 공감이 잘 된다”며 “아이를 키우며 겪은 경험을 나누면서 학부모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상담할 때는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의 감정을 충분히 듣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지원단 김지영 씨(55)는 두 아이가 사이가 안 좋을 경우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한쪽은 ‘째려봤다’고 느낄 수 있다”며 “이럴 때는 아이들과 함께 ‘앞으로 눈이 마주치면 어떻게 행동할지’ 구체적인 약속을 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상담을 마치고 관계가 회복된 아이들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자 보람”이라며 웃었다.학교 현장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 같은 조정 방식이 교육적으로도 훨씬 의미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B 씨는 “학교가 한쪽 편을 들거나 한쪽 이야기만 들으면 오해를 살 수 있어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상담 절차를 통해 침착하게 입장을 정리하고 사과를 주고받는 과정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갈등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B 씨는 또 “앞으로는 지원단의 역할이 더 확대돼 상담을 통한 관계 조정이 필수 절차로 이뤄지면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 북부교육지원청은 올해 지원단 인력을 늘리고 연수 등을 통해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앞으로는 지원단 인력을 퇴직 교원으로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김태식 서울시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은 “소통과 공감으로 갈등을 풀어가는 학교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내년부터 초등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가벼운 사안에 대해서는 학폭위 개최가 아닌 관계 회복 프로그램을 우선하는 ‘관계 회복 숙려제’ 시범사업을 운영할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도 올해 2학기부터 초등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관계 회복 숙려제 시범사업을 운영한다. 6개 교육지원청(동부, 서부, 남부, 북부, 강서양천, 성북강북)이 그 대상이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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