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뜬 두 개의 '그린 라이트'…마리퀴리의 고뇌·개츠비의 환상 [리뷰]

20 hours ago 3

뮤지컬 '마리 퀴리' /사진=라이브 제공

뮤지컬 '마리 퀴리' /사진=라이브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인물의 내면을 담아낸 무대 위 '초록색 불빛'이 관객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한 여성 과학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불리는 라듐이 내는 빛을 바라보며 깊은 혼란과 고뇌에 빠졌고, 매일 밤 파티를 여는 백만장자는 멀리서 빛나는 불빛을 향해 마음의 손을 뻗으며 희망·동경·꿈과 욕망을 품었다.

영국 웨스트엔드 및 미국 브로드웨이를 휩쓸고 금의환향한 뮤지컬 '마리퀴리'와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다.

◆ 숱한 최초의 기록 쓴 여성 '마리 퀴리'…고뇌 안긴 '초록 라듐'

사진=라이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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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는 방사성 원소 라듐을 발견해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와 라듐을 이용해 야광 시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여성 직공 '라듐 걸스'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마리 퀴리는 여성이자 이민자로서 겪어야 했던 온갖 고난 속에서도 학문에 정진하며 마침내 인류의 역사에 빛나는 업적을 이뤄낸 인물이다. 당시의 유리천장은 높고 두꺼웠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유일한 여성이었던 그를 주변인들은 '미스 폴란드'라고 불렀다.

그 안에서도 마리는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가 과학을 하는 이유는 "궁금하니까"였다. "실험과 연구가 그걸 해소해 주고, 그 안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알 필요도, 중요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당찬 여성이었다.

공장 직공 안느 코발스카에게 그런 마리 퀴리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대신 이뤄주는 멋진 친구이자, 자부심이었다. 두 사람은 마리 퀴리가 소르본 대학 입학을 위해 프랑스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만났다. 약소국 폴란드 출신의 이방인이자 여성이라는 공감대는 둘을 단숨에 끌어당겼다.

작품이 강한 흡인력을 갖고 점차 극적으로 흘러가는 데에는 두 캐릭터의 연대가 큰 역할을 한다. 마리가 라듐을 발견하면서 세상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모두가 환하게 빛을 내는 초록색 라듐을 찬양했다. 라듐은 누군가에게는 욕망이, 누군가에는 꿈과 희망이 됐다. 하지만 공장에서 직공들이 잇달아 사망하면서 라듐은 유해성 논란에 부딪히게 됐다. 혼란에 빠진 마리와 진실을 밝히려는 안느가 강조되며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뮤지컬 '마리 퀴리' /사진=라이브 제공

뮤지컬 '마리 퀴리' /사진=라이브 제공

'마리 퀴리'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죽음을 앞둔 마리가 지나온 여정을 딸에게 전부 털어놓는 모습과 함께 안느와의 이야기도 끝을 향한다. 매듭을 짓지는 않는다. 둘의 우정과 신념은 각자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라듐을 발견한 최초의 과학자, 여성 최초 노벨상 수상자, 세계 최초 노벨상 2회 수상, 소르본 대학교 최초 여성 교수까지 마리가 쓴 '최초'의 기록이다. 사후에도 그는 프랑스 위인들만 안치되는 국립묘지 판테온에 안치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작품은 단순히 마리 퀴리의 성과를 되짚는 데에서 나아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과학자로서의 철학과 신념을 놓지 않은 행보가 남긴 의미, 안느라는 인물과의 관계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인간적 성숙까지 확장하며 긴 여운을 남겼다.

'마리 퀴리'는 2020년 한국에서 초연한 창작 뮤지컬이다. 이후 2023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라이선스 초연을 성공리에 마쳤고, 지난해에는 한국 뮤지컬 최초로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현지 프로덕션으로 장기 공연을 진행했다.

특히 마리 퀴리의 고국인 폴란드에도 '역수출'됐다는 점이 뜻깊다. 폴란드에서 한국 오리지널 팀의 특별 콘서트와 공연 실황 상영회를 개최했으며, '폴란드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 순수한 사랑의 비극…현실 넘지 못한 초록빛 환상 '위대한 개츠비'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마리 퀴리'가 여성 서사에 집중한다면, '위대한 개츠비' 속 그린 라이트는 남성 캐릭터인 제이 개츠비의 고독과 허망을 대표하는 오브제로 작용한다.

1922년 경제 호황 속에서 도시 전체가 향락에 취해 있던 재즈 시대.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대공황 직전, 거품 경제로 석유·주식 투기·밀주가 팽배한 가운데 신흥 부자가 속출하던 때를 배경으로 한다.

웨스트에그의 저택에서는 매일 밤 황홀하고 사치스러운 파티가 열렸다. 성대한 파티의 호스트는 제이 개츠비.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알지 못했지만, '호화스러움의 끝판왕'으로 유명한 그의 파티는 "가고 싶은 곳"으로 소문이 나며 많은 이들을 홀렸다. 밤마다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의 발걸음이 웨스트에그로 향했다.

공연의 포문을 여는 넘버 '뉴머니'는 웨스트에그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무대 좌·우, 상부가 최대한으로 열리며 개방감이 극대화한 가운데, 에너지 넘치는 군무,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빛 무대와 불꽃, 의상이 단번에 시선을 끈다.

시끌벅적한 파티 분위기 속에서도 개츠비는 유독 고독해 보인다. 개츠비의 시선이 닿은 곳은 해안 건너편 이스트에그. 그곳에서 나오는 초록색 불빛은 개츠비에겐 존재 이유였다. 가난한 군인이었던 개츠비는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 뷰캐넌과의 재회를 꿈꾸며 신흥 부자로 탈바꿈했고,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그렇게 만남이 성사되지만, 뷰캐넌에겐 남편 톰 뷰캐넌이 있었다. 하지만 톰은 이미 바람을 피우고 있는 상황.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에 늘 헛헛한 마음이 컸던 뷰캐넌에게 일편단심 개츠비는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었다. 설렘·애틋함 등의 감정이 피어오르며 '사랑'이라는 목표에 가까워지는 듯했지만, 이는 마치 허상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이내 비극을 맞는 개츠비의 모습은 가슴 저릿한 여운을 남긴다. 오로지 사랑밖에 몰랐던 개츠비의 순수함은 그저 현실감 없는 패기에 그치는 것이었을까. 화려함의 끝은 한없이 초라하다. '뉴머니'로 대변되는 웨스트에그에서 '올드머니(전통 부자)'로 이뤄진 이스터에그의 초록빛 불을 바라보는 개츠비의 뒷모습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화려함과 유려함을 동시에 잡은 무대 예술도 훌륭하지만, 특히 매력적인 건 제이슨 하울랜드의 음악이다. '마타하리',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의 편곡자로 한국인의 정서를 파고드는 섬세한 흐름을 구현해냈던 그는 이번에 작곡가로 활약했다. 각 장면에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넘버로 시종일관 듣는 즐거움을 안긴다. 웅장하고 고전적인 멋이 흐르는 군무신의 넘버부터, 개츠비와 뷰캐넌의 감성적인 면을 부각한 넘버까지 놓쳐선 안 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가 한국 최초, 아시아 최초로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먼저 선보인 작품이다. 지난해 4월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해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한 이래로 20주 이상 '원 밀리언 클럽'을 유지했다. 개막 1년 만에 누적 관객수 60만명을 돌파했고,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도 빠르게 진출해 흥행 열기를 이어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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