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에 사는 30대 직장인 송모 씨는 최근 가족들과 3박4일간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약 7년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으로 면세점 쇼핑도 생각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송 씨는 "예전에는 출국할 때 면세점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구입했는데 이번엔 너무 가격이 비싸 구경만 했다"고 말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면세업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면세점 이용객이 매년 감소세를 보이는 데다 환율 상승으로 면세품 가격이 오르면서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다. 여행객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서고 있지만 면세업계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오후 3시30분 기준)은 전날보다 10원90전 오른 1484원10전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2일(1496원50전) 이래 16년여 만의 최고치다. 원화 가치 하락 속도도 가파르다. 3거래일 만에 50원 폭락했다.
매년 여행객 증가세지만 면세 쇼핑은 줄었다
환율 상승으로 여행 경비가 늘어난 여행객들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데다 면세품 가격이 뛰어 구매를 꺼리고 있다.
심지어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구매하는 게 더 저렴하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일례로 유명 가방 브랜드의 백팩 가격은 면세점에서 구매하면 650달러다. 한화로 계산 시 95만원가량이다. 그런데 동일 상품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80만원 후반대로 최소 6만원 이상 저렴하다. 여기에 각종 할인 혜택까지 받으면 차이는 더 벌어진다.
명품 향수, 핸드크림 등의 수요는 '카카오톡 선물하기' 등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 결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업계 매출은 14조2248억원으로 전년 13조7585억원에서 3.2% 줄어들었다. 2022년(17조8163억원) 대비로는 20% 감소했다. 여행객은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매출은 쪼그라든 셈이다.
"코로나19도 버텼는데"…자구책 마련 나서
면세업계는 고환율과 고물가로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소비 부진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사상 최악 실적을 기록했다.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 등 대형 면세점 4사의 영업손실액은 2776억원에 달한다.
면세업계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신세계면세점은 부산점을 지난 1월에 폐점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롯데월드타워점의 매장 면적을 30% 줄이고, 부산점도 1개 층으로 축소했다. 현대면세점은 오는 7월 동대문점 문을 닫는다. 삼성동 무역센터점은 현재 3개 층에서 2개 층으로 축소 운영한다.
희망퇴직을 받아 인건비 절감에도 나섰다. 지난해 롯데·신세계·HDC신라 등이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한 데 이어 9일 현대면세점이 근속연수 3년 이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중국 단체객 무비자 기대…내국인 면세한도 풀어야
업계는 '면세 한도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여행자의 입국 면세 한도는 800달러(약 116만원)다. 일본 입국 면세범위는 20만엔(약 198만원), 중국 하이난 연 10만위안(약 1981만원)에 비해서도 적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내국인은 면세한도 때문에 한도 범위 내에서 구매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최근에는 환율 영향으로 구매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오는 3분기 시행 예정인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 대상 한시적 '비자 면제' 추진에 유커의 '싹쓸이 쇼핑' 수요 회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 목적은 쇼핑이 큰 데다 여행사를 통해 들어오는 만큼 송객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여행사가 쇼핑 코스를 많이 늘리지 않을까 싶다"며 "수익성 비중 가운데 단체 여행객이 60~70%가량 나왔던 만큼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방한 시장에서 비중이 큰 중국 관광객 대상으로 입국 편의를 제공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취지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 뒤 이달 중 시행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용현 한경닷컴 기자 yong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