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이 올해 4분기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를 추월한다. 메모리의 수익성이 파운드리를 넘어서는 것은 2018년 4분기 이후 7년 만이다. 인공지능(AI)산업 중심이 그래픽처리장치(GPU) 주도의 ‘학습’에서 데이터를 저장한 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게 중요한 ‘추론’으로 옮겨가며 메모리 수요가 급증해서다. 고성능 D램과 낸드플래시가 AI 발전 속도를 좌우하는 ‘메모리 센트릭(중심)’ 시대가 본격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반도체 및 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4분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와 SK하이닉스의 매출총이익률은 각각 63~67% 수준으로, TSMC(회사 공식 전망치 6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매출총이익(매출-원가)을 매출로 나눠 산출하는 매출총이익률은 핵심 수익성 지표로 꼽힌다. 삼성과 SK에 이어 메모리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 17일 2026회계연도 1분기(9~11월) 56%인 매출총이익률이 2분기(12월~내년 2월)에 67%로 뛸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내년 1분기에는 마이크론도 수익성 측면에서 TSMC를 넘어선다는 의미다.
TSMC는 최근 2~3년간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 이하 초미세 생산 공정과 최첨단 패키징을 앞세워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등의 AI 가속기 생산을 전담했다. AI 가속기가 AI의 학습 성능을 좌우하면서 TSMC는 GPU를 설계하는 엔비디아와 함께 AI 반도체 시대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AI산업의 무게추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바뀌자 상황이 달라졌다.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전송하는 능력뿐 아니라 중간중간 데이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빠르게 꺼내 쓰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해서다. 고대역폭메모리(HBM)뿐만 아니라 범용 D램인 GDDR7, LPDDR5의 몸값도 가파르게 뛰고 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가 AI 컴퓨팅의 중심이 되는 메모리 센트릭 시대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메모리 반도체가 자율주행부터 AI 데이터센터, 첨단 전자기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AI 추론의 시대 '메모리 골디락스' 온다…"내년 시장 4400억 달러"
파운드리 넘어선 메모리 매출총이익률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엔비디아 모멘트’(인공지능 반도체 혁명을 이끈 엔비디아처럼 특정 기업이 산업 틀을 바꾸는 순간)가 시작됐다.”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이 지난 17일 2026회계연도 2분기(12월~내년 2월) 매출총이익률(매출총이익÷매출) 전망치로 ‘67%’를 제시하자, 반도체업계에선 이런 반응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의 ‘조연’에 불과했던 메모리 업계의 막내가 TSMC(60%)를 넘어 ‘주연’인 엔비디아(72%)에 필적하는 이익률을 예고해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메모리가 AI산업 발전 속도를 좌우하는 ‘메모리 센트릭(중심)’ 시대가 본격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제친 메모리
메모리 센트릭 시대는 수치로 증명된다. 21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메모리 시장은 2024년 1650억달러(약 244조3650억원)에서 2025년 약 2250억달러를 거쳐 2026년엔 약 420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1년 만에 시장 규모가 두 배가량으로 커진다는 얘기다.
글로벌 투자은행(IB)도 메모리 시장 전망치를 올려 잡았다. 노무라는 “D램, 낸드플래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3중 슈퍼사이클이 온다”며 내년 메모리 시장 규모를 4450억달러로 제시했다. JP모간은 2026년 3625억달러, 2027년 4176억달러로 기존 전망치 대비 각각 37%, 44% 높였다.
이에 비해 3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에서 엔비디아, 구글, 애플 등의 최첨단 AI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올해 1994억달러에서 내년 2300억달러로 1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추론 시대 맞아 구조적 성장
메모리 시장 규모를 불리는 1차 원인은 ‘가격 급등’이다. 메모리 3사가 D램을 8~16개씩 쌓아 만드는 HBM에 전체 D램 생산능력의 18~28%를 배정하면서 범용 메모리 공급이 부족해진 영향이다. 최근 범용 D램 가격은 분기마다 30% 넘게 오르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업계에선 당장의 수급보다 메모리산업의 구조적 성장에 주목한다. AI 시대가 막 들어섰을 때는 데이터 ‘학습’이 1순위였다. 학생이 공식을 외우며 오답 노트를 작성하는 단계다. 여기에 딱 맞는 기기가 빠른 데이터 연산을 가능케 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능한 HBM으로 구성된 AI 가속기다. 구글, 메타 등 빅테크 사이에 AI 가속기 쟁탈전이 벌어지니 GPU를 활용해 AI 가속기를 개발하는 엔비디아와 수탁생산을 맡은 TSMC가 AI 반도체산업의 중심에 선 건 당연한 일이었다.
AI 시대가 ‘추론’으로 옮겨 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추론은 학습을 통해 마련한 오답 노트를 활용해 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중간중간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했다가 GPU에 수시로 보내주는 HBM 등 메모리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이 과정에서 HBM보다 성능이 다소 떨어져도 전력을 덜 쓰는 ‘범용 메모리’ 수요도 폭발하고 있다. 초기 단계 추론은 GDDR7, LPDDR5X 같은 범용 D램이 담당하고, 본격적인 추론만 HBM에 맡기는 것이다. 추론용 AI 가속기에 GDDR7을 채택한 엔비디아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럼에도 추론 시장이 워낙 빨리 커지는 만큼 HBM 수요는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론은 이런 점을 감안해 글로벌 HBM 시장 규모가 1000억달러를 돌파하는 시점을 2030년에서 2028년으로 2년 앞당겨 제시했다.
◇신개념 메모리 등장
메모리 위상 강화는 높은 수익성에서 확인된다. 올 4분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와 SK하이닉스의 매출총이익률은 63~67%로, 60%로 예상되는 TSMC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내년엔 매출총이익률이 70%에 육박하며 엔비디아(72~73%)에 버금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메모리 기업들은 AI에 특화한 고성능 제품을 개발해 메모리 센트릭 시대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메모리가 GPU의 연산 기능까지 일부 처리하는 ‘PIM’(프로세싱인메모리)이 대표적이다. 적은 면적에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수직채널트랜지스터(VCT) D램, 3차원(3D) D램 등도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황정수/강해령/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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