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전에 만족은 없다"…한국 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 최경주
◆ 매경이 만난 사람 ◆
'GO'를 외치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
프로골퍼로서 30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최경주(54·SK텔레콤)는 "여전히 배고프다"고 말한다. 올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우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챔피언스 메이저 대회 더 시니어 정상에 오른 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서울 용산구 최경주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이 정도면 됐다, 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한 최경주는 올해 프로골퍼로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지만 시즌 때와 동일하게 몸 관리를 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잡기 위해서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옵니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열매는 준비된 자만이 맛볼 수 있죠. 어떤 상황에서도 파(Par)를 잡아낼 수 있는 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SK텔레콤 오픈에서 우승할 수 있었어요. 만약 내가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면 'K.J CHOI 아일랜드'에 공을 살려놓은 하나님의 인도에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에 진출한 최경주는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포함해 통산 8승을 차지했다. 2020년부터는 만 50세 이상 선수들이 경쟁하는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2021년 한국 선수 최초로 정상에 오른 그는 올해 메이저 챔피언으로 거듭났다.
또래 중장년층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젊은 세대에게는 동기를 부여하는 아이콘이 된 그는 "앞으로도 내 사전에 만족과 대충이라는 단어는 없다. 매년 발전하는 프로골퍼 최경주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부딪치고 도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한 한 해를 보낸 그는 다음달부터 다음 시즌 준비에 돌입한다.
-최고 한 해를 보냈다. 올해 점수는 몇 점인가.
▷100점짜리 시즌은 없다. 그래도 95점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시즌에 앞서 세웠던 모든 목표를 달성한 건 올해가 프로 데뷔 이후 처음이다. 그럼에도 95점을 준 것은 다음 시즌을 위해서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1점 더 높은 96점짜리 시즌을 만들어보겠다.
-최경주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노력 기준은 어느 정도인가.
▷부담과 불안이 다른데 샷과 퍼트를 하기 전에 불안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안 된다. 사람마다 그 기준점이 다른 만큼 빠르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골프를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남들보다 연습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과 정신력 등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대로 말하면 충분한 훈련이 안 돼 있다는 것이다. 노력의 시간이 부족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해준 조언은 무엇인가.
▷연습 시간과 스윙 등 나만의 기준이 확실하게 있어야 한다. 비제이 싱은 하루에 2000개를 쳐야 컨디션이 유지되는 반면에, PGA 투어 통산 8승의 제프 오길비는 하루에 50개밖에 연습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준점이 다르다.
-50대 중반이 되면 직장에서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또래 중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GO'가 중요하다. 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어디론가 가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삶 속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무조건 GO를 해야 한다. 육체가 움직여야 생동력이 생긴다. 일단 도전하고 부딪쳐야 새로운 답이 나올 것이다.
-남들보다 늦은 고등학생 때 골프를 시작했지만 세계 최고가 됐다. 출발이 늦은 사람들에게 격려 한마디를 부탁한다.
▷꾸준하면서 성실하고 자만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 계속해서 도전하고 부딪치면 언젠가는 원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 주변을 보면 '저 친구는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되면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긴 시기는 언제인가.
▷골프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한 건 군대를 다녀온 1992년이다. 군 전역 후 3개월 뒤에 라운드를 나갔는데 라이프 베스트인 67타를 쳤다. 지금은 없어진 서산의 한광 연습장에서 일했을 때다. 한 번도 못 쳐봤던 60대 스코어를 4일 연속으로 친 뒤로 엄청난 자신감이 생기게 됐다.
-실수가 나왔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
▷보기를 하면 더블 보기를 안 해서 다행이다. 1m 퍼트를 하기 전에는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어드레스에 들어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고 빠르게 잊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술과 담배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부터 절제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인가.
▷KPGA 투어를 누빌 때는 하루에 담배를 3갑씩 피웠다. 미국 진출 초기에 담배를 안 피우면 거리가 더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끊었다. 술을 마시지 않게 된 건 2018년 갑상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2022년부터는 탄산음료와 커피도 마시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만 섭취하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는 습관이나 루틴이 있는가.
▷우선 생활을 잘해야 한다. 몸을 혹사하면 안 된다. 다음은 기본기다. 기본을 무시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올렸던 모든 게 무너지게 된다. 그립과 스윙 궤도 등을 비시즌에도 매일 체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0분 이상 러닝과 스쾃 120회, 푸시업 30회, 악력기 20회 등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67세에도 PGA 투어 챔피언스 정상에 오른 베른하르트 랑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PGA 투어 챔피언스 선수라면 누구나 랑거를 롤모델로 생각한다. 우리끼리 모이면 랑거처럼 해야 잘 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랑거는 지금도 라운드 3시간 전에 나와서 스트레칭 등 정해진 운동을 최소 40분간 매일 하고 있다. 나도 관리를 잘하면 67세까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듀크대에서 골프 선수로 활약 중인 아들과 PGA 투어를 함께 누빌 수 있을까.
▷아들은 내가 50세가 넘어서도 골퍼로서 활약할 수 있도록 특별한 힘을 주는 존재다. 살다 보면 연습하기 싫고 소파에 누워 있고 싶은 날이 정말 많다. 그럴 때 아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연습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만큼 아들과 함께 PGA 투어를 누비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2008년 최경주재단을 설립했다. 멋지게 성장한 재단 출신 꿈나무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처음 재단을 설립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 만류하는 분이 많았다. 아내와 메인 스폰서 SK텔레콤 등 주변의 도움으로 재단을 지금까지 운영할 수 있었다. 힘든 것보다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게 더 많다. 프로골퍼 외에도 지도자와 공부로 성공한 아이들이 정말 많다. 앞으로도 책임감을 갖고 모범을 보이는 이사장이자 프로골퍼 최경주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
-골프를 인생에 비유하면 현재 몇 번홀에 있는 것 같은가.
▷15번홀 티박스에서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낸 뒤 첫걸음을 내딛는 기분이 든다. 많은 홀이 남지 않은 만큼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한 샷, 한 샷에 집중하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잘해온 것처럼 마무리도 멋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하고 싶다. 하지만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만큼 현재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PGA 투어 챔피언스 올해의 선수와 함께 찰스 슈와브컵 1위를 차지해보고 싶다. 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상상을 하고 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언젠가는 100점을 줄 수밖에 없는 시즌을 만들어보겠다.
프로 골퍼 최경주는
△1970년 전남 완도 출생 △1993년 KPGA 입회 △프로 통산 31승(한국 17승, 일본 2승, 유럽·아시아 각각 1승, PGA 투어 8승, PGA 투어 챔피언스 2승) △2002년 한국인 최초 PGA 투어 우승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2020년 도쿄 올림픽 골프 남자부 한국대표팀 감독 △2024년 KPGA 투어 최고령 우승(54세) △2008년~최경주재단 이사장
[임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