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실탄 사활 건 도요타
돈 버는 계열사 ‘상장폐지’
주주환원보다 투자가 우선
장치산업 투자 무거운 숙명
‘중복상장’ 악마화는 위험
적극적 주주환원과 미래 투자를 위한 사내 유보금 확대의 균형점은 어디일까. 요즘 밸류업 압박에 잠 못 이루는 기업이 많다. 철강, 조선, 자동차 등 무겁고 두껍고 길고 큰(중후장대) 산업이 골간인 한국 경제에는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본 국민기업 도요타의 요즘 행보에 눈길이 간다. 도요타는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는 그룹의 모태이자 알짜 상장사인 ‘도요타자동직기’를 비공개 전환(상장폐지)한다. 1926년 창업주 도요다 사키치가 설립한 회사로, 현재 그룹 내 상호출자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상호출자 해소라는 밀린 숙제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물음표가 생긴다.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굳이 그룹의 뿌리이자 멀쩡한 상장사를 비공개로 전환한다는 게 어색하다. 서로 지분 정리만 하면 될 일인데 말이다.
여기에 숨은 도요타의 계산은 ‘미래 투자금’ 확보다. 도요타자동직기는 연간 2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쌓는 알짜 기업이다. 지게차·압축기 시장 세계 1위로, 그룹 내 캐시카우. 그런데 지금 도요타그룹은 전기차 전환과 수소에너지 사업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 장치산업 기업이라면 늘 충분한 ‘내부 유보금’을 쌓는 게 숙명이다.
문제는 이런 내부 고민이 투자자들에겐 이해와 응원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내 유보금을 최소화하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적극 돌리라는 게 투자자들의 요구이자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다.
도요타자동직기 상장폐지는 이 딜레마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요타자동직기)의 배를 지키겠다는 각성에 가깝다. 시장에 풀린 지분을 매입하는 데 써야 할 56조원은 당장 그룹에 큰 부담이다. 그렇더라도 미래 투자 수요에 대비하려면 도요타자동직기의 산출물을 온전히 그룹 내부로 귀속시켜야 한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다.
도요다 아키오 그룹 회장은 이런 작업을 “도요타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도요타자동직기 주당 매입가를 올리라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주장에는 “주주는 장기 보유로 회사를 발전시키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유력 계열사를 상장폐지하는 도요타 행보는 일본 증시의 밸류업 흐름에 반가운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버는 족족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쓰는 기업을 모범으로 보는 시각도 건강하지 못하다. 오죽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자국 방산 기업을 향해 과도한 자사주 매입을 멈추고 시설 투자에 집중하라고 요구하지 않나.
최근 맥킨지는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7개 옴니스케일러(전방위 거대기업)를 지목했다. 단순히 돈 잘 버는 기업이 아닌, 회수 구간이 까마득한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는 기업들이 중요하다는 것. 7곳 중 3곳이 아시아 기업으로, 한국의 삼성과 중국의 알리바바·화웨이가 이름을 올렸다.
어쩌면 인공지능(AI)이 세상에 내린 축복 중 하나는 거대 자본지출(CAPEX)에 대한 주주들의 ‘항체’ 형성일 것이다. 시설 투자 부담 없이 똘똘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성공한 미국 빅테크들도 어느덧 막대한 데이터센터 구축에 잉여 현금이 바닥나 차입 경영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알짜 모회사를 상장폐지해 미래 투자의 화수분으로 쓰려는 도요타의 전략은 길게 보면 주주들에게 이익일 것이다. 반대로 과거 알짜 사업부를 분할해 상장하는 전략도 미래 투자금 확보를 위한 거대 장치산업 기업들의 숙명과 같다. 미래 성공 투자로 주주가치에 부합하겠다는 전략을 ‘중복 상장’으로 악마화하는 건 반쪽 비판이다. 밸류업도 좋지만, 거대한 자본지출을 감내해야 하는 기업 몸부림을 우린 좀 더 포용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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