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창단 28년만에 첫 챔프전 우승
3승→3패뒤 SK 꺾고 챔피언 등극… 최고참 식스맨 허일영 14점 맹활약
프로농구 첫 3개 구단서 우승반지
조상현 ‘선수-코치-감독’ 모두 우승
프로농구 LG의 최고참 허일영(40)은 17일 역대 최고령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한 뒤 이렇게 말했다.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생애 첫 MVP를 차지한 허일영은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라며 눈물을 흘렸다.
LG 주장 허일영은 이날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SK와의 2024∼2025시즌 챔프전(7전 4승제) 최종 7차전에서 양 팀 선수를 통틀어 최다인 14점(3점슛 4개)을 올리며 팀의 62-58 승리를 이끌었다. LG는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1997년 창단 후 28년 만에 첫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종료 5분 36초를 남기고 10점 차 리드(55-45)를 만드는 결정적 3점슛을 성공시킨 허일영은 기자단 투표 80표 중 32표를 받아 MVP로 선정됐다. 상금은 1000만 원.
2009년 프로에 뛰어든 허일영은 오리온(2015∼2016시즌)과 SK(2021∼2022시즌)에서 챔프전 정상에 오른 것을 포함해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프로농구 역사상 3개 구단에서 챔프전 우승 반지를 낀 건 허일영이 최초다.프로에서 15시즌을 뛰는 동안 그는 주인공보다 조연이 익숙한 선수였다. 슈팅 능력이 좋은 포워드로 평가받지만 상을 받을 정도로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적은 없었다. 긴 세월 동안 라운드 MVP조차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꿈꾸는 챔프전 MVP에 오르며 그간의 설움을 한 방에 씻어냈다.
더구나 챔프전 상대 SK는 지난 시즌까지 허일영이 몸담았던 팀이다. SK 시절 다른 베테랑 선수들과 함께 ‘노인즈’(나이 많은 선수들)로 불렸던 허일영은 작년 5월 LG로 이적했다. 지난 시즌 후 SK와의 재계약에 이르지 못한 허일영은 “(LG에서)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챔프전에서 SK를 만나 ‘운명의 장난 같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LG에서 식스맨으로 뛰면서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조상현 LG 감독(49)이 공격적 재능이 뛰어난 그에게 수비 역할을 강조한 것도 부담이 됐다. 허일영은 “출전시간이 줄었을 땐 ‘이럴 거면 나를 왜 데리고 왔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수비 문제로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서 이번 챔프전에선 악착같이 수비에 더 집중하려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1∼2년은 더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는 다음 시즌에도 후배들과 당당히 주전 경쟁에 나서겠단 마음이다.
조 감독과 허일영은 2016년엔 오리온의 코치와 선수로 우승을 합작했다. 이번 챔프전에서 3연승 후 3연패를 당해 위기에 빠졌던 조 감독은 “내가 힘들 때 (허)일영이가 전화를 걸어와 ‘걱정하지 마시고 전략 구상에 집중하세요’라고 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선수들이 우승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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