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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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7.08 17:54 수정2025.07.08 17:54

[마켓칼럼]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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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칼럼]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마켓칼럼]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이 시작됐다

홍성관 라이프자산운용 부사장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대전환: 주인이 바뀐다]

기업에 진정한 '주인'이 있을까? 단순히 지분율만으로 그 답을 정의할 수는 없다. 몇 달 전 한 배우가 본인이 100% 지분을 보유한 법인의 자금을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은 사건은, ‘소유(Ownership)’와 ‘지배(Control)’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과 제도는 지분율과 무관하게 법인을 '공적 주체'로 간주하며, 사적 소유의 한계를 명확히 규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물며 거래소에 상장돼 다수의 주주로 구성된 기업에 대해서조차 '오너', '오너가'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 중에는 여전히 기업을 개인이나 가족의 전유물처럼 인식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적으로도, 시대정신으로도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을 바로잡는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지금 우리는,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되묻는 시대적 전환점 앞에 서 있다.

미국 다우지수: 기관 중심의 자본이 지배하는 시장
1928년 10월 1일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미국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ow Jones Industrial Average)는 각 산업별 블루칩 30개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블룸버그

출처 : 블룸버그

다우지수에 포함된 30개 기업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뱅가드, 블랙록, 웰링턴, 스테이트 스트리트,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 UBS 등 글로벌 대형 금융기관들이 최상위 주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펀드 형태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반면 창업자 개인이 여전히 상위 주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매우 제한적이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2.30%),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8.53%), 엔비디아의 젠슨 황(3.52%) 등이 그 몇 안 되는 예외적인 사례다.

참고로 다우지수에는 포함이 되어 있지 않지만,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도 약 12.75%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인이 간접적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드문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월마트는 창업자 샘 월튼의 자녀들이 별도의 가족법인과 신탁을 통해 약 45%의 지분을 보유하며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역시 한때는 개인 자본가들이 기업을 창업하고 지배하던 시기가 있었다. 19세기 후반 ‘도금시대(The Guilded Age)’에는 철도의 코넬리어스 밴더빌트, 철강의 앤드류 카네기, 석유의 존 D. 록펠러, 금융의 J.P. 모건, 전기의 토머스 에디슨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100여년에 걸쳐 여러 세대를 지나오면서, 특히 20세기 중후반부터는 기업 지배 구조가 펀드 중심의 기관 투자자 체계로 전환되어 왔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반독점법 강화, 상속세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시장의 성장이 자연스럽게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견인해 왔다. 수조 원 규모의 기업을 한 개인이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것보다, 한 기업에 여러 기관들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운영하는 구조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는 시장의 판단이 오랜 시간 작동해온 결과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조차도 1986년 IPO 당시 약 49%의 지분을 보유했으나, 현재는 재단을 통해 약 0.38%만을 보유하고 있다.

테크 기업의 이중 의결권 구조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테크 기업 중에서는 창업자의 장기 비전과 기술적 통찰력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경우, 창업자가 상장 이후에도 실질적인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이중 의결권 구조(dual-class share structure)’를 채택하는 사례들이 있다.

알파벳은 Class A, B, C 주식을 발행한다. Class A는 1주당 1표의 의결권이 있고, Class B는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보유하며 1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가진다. Class C는 의결권이 없으며 배당 권리는 동일하다. 덕분에 두 창업자는 전체 주식의 12% 미만을 보유하면서도 전체 의결권의 51% 이상을 행사할 수 있다.

메타도 비슷한 구조다. 마크 저커버그는 Class B 주식을 통해 1주당 10표의 의결권을 갖고 있으며, 전체 지분의 13% 정도만으로도 과반의 의결권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서도 창업자의 비전과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테크 기업의 경우 장기 혁신과 민첩한 의사결정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복잡한 지배구조의 미로
우리나라 상장기업들의 복잡한 지배구조는 한국 자본주의의 독특한 발전 경로를 여실히 보여준다. 1960년대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전략 속에서 대기업 집단, 이른바 '재벌'은 외형 성장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장되었고, 이는 곧 기업 지배권을 둘러싼 복잡한 순환출자 및 내부 간접지배 구조로 이어졌다. 개발도상국 단계에서 자본 축적과 경영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선진 경제로 진입한 오늘날에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시장 신뢰를 저해하는 구조로 지적 받고 있다.

실제 주요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특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생명이 7.56%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삼성물산(4.44%)과 삼성화재(1.31%)가 그 뒤를 잇는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삼성물산(19.34%)이 최대주주이며, 삼성물산은 이재용 회장이19.76%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다.

이 회장은 직접적으로도 삼성전자의 지분을 1.45%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생명을, 다시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고 있다. 시가총액 3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삼성물산이 43.06%, 삼성전자가 31.22%를 보유해 사실상 삼성 내부 계열사 간 지분 연결망을 통해 지배되고 있다.

시가총액 2위인 SK하이닉스의 경우도 유사한 구조다. SK하이닉스의 최대주주는 SK스퀘어(20.07%), SK스퀘어의 최대주주는 SK㈜(31.50%), 그리고 SK㈜의 최대주주는 최태원 회장(17.76%)이다. 이처럼 지주회사 체계를 활용한 수직적 지배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LG에너지솔루션(시가총액 4위)은 LG화학이 81.84%를 보유하고 있고, LG화학의 최대주주는 LG(31.52%), LG의 최대주주는 구광모 회장(15.95%)이다. 구광모 회장의 특수관계인으로 등록된 24명의 친인척 역시 지분을 나눠 보유하며 가문 중심의 경영권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시가총액 5위인 현대자동차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10대 그룹이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21.8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는 기아(17.66%), 기아의 최대주주는 다시 현대자동차(34.53%)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자본시장에서 상장기업의 실질적인 경영권은 종종 시장에서 파악 가능한 단순한 지분율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 사슬의 이해를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구조다.

서울 부동산에서 먼저 벌어진 변화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는 더뎠지만, 서울의 주요 부동산 소유구조는 이미 리츠와 펀드를 비롯한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광화문 일대의 트로피 에셋(상징성 있는 자산)으로 꼽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SFC)는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이 보유하고 있다. 실질적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중구의 초대형빌딩인 센터원은 맵스리얼티1이라는 상장된 공모펀드와 사모펀드인 맵스프론티어가 보유하고 있다.

여의도의 IFC는 캐나다 최대의 대체투자운용사인 브룩필드자산운용의 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코람코자산신탁이 운용하는 코크렙제51호리츠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빌딩을 소유하고 있고, KB강남오피스제1호리츠는 강남의 N타워를 갖고 있다.

이외에도 서울의 주요 대형 건물들이 리츠, 펀드 등의 기관투자자들 소유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상장기업의 지배구조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할 것이라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제도적 압력과 세대 교체: 변화의 물꼬를 트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산에 대한 상속세가 약 12조 원이었고, 넥슨 김정주 회장의 유족들이 물납한 상속세 가치가 4조 7천억원이었다. 이런 상속과 증여의 과정에서 대주주의 지분 희석은 불가피하다.

중견기업들의 경우에는 후계 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대를 이어 제조업 경영을 맡기보다는, 현금을 받아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특히 해외 유학을 다녀온 2-3세들은 지방에서 남색 공장 점퍼를 입고 근무하기보다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지에서 IT, 바이오, 핀테크와 같은 새로운 산업에 투자하는 일에 더 흥미를 갖는다.

M&A 자문사나 사모펀드(PE) 매니저들이 이렇게 기업을 매각하려는 니즈를 가진 제조업체들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상속세라는 제도적 압력과 세대 교체라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맞물려 발생한다.

기술과 시장이 만든 새로운 감시 체계
모바일 기술의 발전과 정보 비대칭의 해소는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을 실질적인 기업 감시자로 변화시키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공시, 뉴스, 주주총회 안건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SNS는 불공정 행위를 순식간에 전세계에 퍼뜨린다.

특히 MZ세대 직장인들은 이전 세대처럼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다. 블라인드와 같은 익명 플랫폼을 통한 내부 고발 리스크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고, 기업은 법보다 빠른 '공론장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더 투명해지기를 강요받고 있다. 액트(ACT)와 같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군집시키는 플랫폼들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적 차원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개정되는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의 이익을 명시적으로 추가하고,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의 감사위원 선임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이는 그동안 소위 '오너 중심'으로 운영되던 기업 지배구조에 제도적 견제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시장의 요구가 법제도로 구현되는 상징적 변화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상속세, 세대교체, 기술혁명, 투자문화의 진화, 글로벌 경쟁 심화라는 복합적 변화 속에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결론: 미래를 향한 지배구조의 진화
미국 기업들은 성장 단계에 따라 차별화된 지배구조를 보여준다. 성숙기에 접어든 전통 기업들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투명한 구조로 바뀌었고, 성장기의 테크 기업들은 이중 의결권 등을 통해 창업자가 경영권을 유지하는 모델을 택하고 있다.

두 모델 모두 다양한 기관투자자의 참여로 투명성이 제고되어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반드시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일부 초대형 자산운용사들의 불투명한 의결권 행사 프로세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참여는 바람직한 지배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현재 전환의 중간 단계쯤에 있다. 상장된 대기업들 대부분에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아직은 지분율도 낮고 기업을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한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시장의 요구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개별 기업들의 발전 단계와 상황에 맞는 유연한 지배구조 설계다. 성장 단계에서는 창업자 비전 실현 구조를, 성숙 단계에서는 전문경영인 중심 구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구조든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과 투명한 의사결정을 기본으로 전제해야 한다.

변화가 완료되는 시기에는 한국의 대기업들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더 투명하고, 더 전문적이며, 더 글로벌한 기업들로 진화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대부분 기업들의 '주인'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 개인들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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