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반도체, '초연결'의 시대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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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칼럼] 반도체, '초연결'의 시대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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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칼럼] 반도체, '초연결'의 시대로 진화하다

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

반도체 기술의 역사는 인류가 세상을 계산하고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1970년대, 폰 노이만 구조의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등장하며 CPU·RAM·ROM이라는 현대 컴퓨팅의 골격이 세워졌다. 1990년대에는 공정 혁신이 단가를 낮추며 '1인 1PC' 시대를 열었고, 정보의 대중화가 본격화됐다. 이후 반도체의 소형화는 손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수십억 개 트랜지스터의 '초연결(Hyper-connectivity)'이 기계로 하여금 스스로 보고, 듣고, 분석하게 만드는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

오늘날 AI 혁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컴퓨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다. 그 중심에는 CPU에서 GPU로의 주권 이동이 있다. CPU를 '복잡한 과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소수의 박사급 인력'이라 한다면, GPU는 '단순한 계산을 수행하지만 수십억 명에 달하는 초등학생 군단'에 가깝다. AI 시대에는 박사 한 명의 정교한 논리보다, 수조 개의 태스크를 동시에 처리하는 집단의 병렬 연산이 압도적인 효율을 발휘한다. 이것이 반도체 공정에서 말하는 '초연결'의 실체다.

이 초연결은 단일 칩의 성능에 머물지 않는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데이터 전송의 병목을 해소하고, 여러 GPU와 메모리를 하나로 묶는 '멀티 칩 커넥션(Multi-chip Connection)'으로 확장되고 있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칩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하는 세계다. 시장 전문가들이 향후 5년간 GPU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CAGR)을 50% 이상으로 전망하는 배경도 바로 이 연결의 확장성에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에는 반드시 새로운 숙제가 따른다. 칩들이 복잡하게 얽힐수록, 개별 칩을 따로 검사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완제품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 CPU·GPU·HBM이 유기적으로 연동하며 정상 작동하는지를 시스템 단위에서 검증하는 '시스템 레벨 테스트(SLT, System Level Testing)'의 수요가 폭발하는 이유다.

필자가 주목하는 대만의 크로마(Chroma ATE)는 바로 이 지점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SLT 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크로마는 현재 전 세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사실상 시장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 이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서 크로마를 포함해 단 세 곳뿐이다. 반도체 테스트 장비 시장의 전통적 강자인 일본의 어드밴테스트, 미국의 테라다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SLT라는 특화 영역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했다는 사실은, 이 회사의 기술적 해자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크로마가 40%에 달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유지하며 글로벌 포트폴리오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부품이 아니다. 지능을 품은 거대한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이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검증 기술은 AI 산업의 숨은 주역이다. 연결이 복잡해질수록 그 연결의 신뢰성을 증명하는 기업의 가치도 함께 높아진다. 초연결 시대의 길목을 지키는 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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