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스님 가비 "사람 잘 따르고 과충전 안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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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로봇 ‘가비’ 스님이 수계를 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최혁 기자

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로봇 ‘가비’ 스님이 수계를 받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최혁 기자

“생명을 존중하고 해치지 않겠습니까?” 스님의 물음에 키 130cm짜리 로봇이 또박또박 답했다. “예, 않겠습니다.”

6일 서울 수송동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회색 장삼에 가사를 두르고 108염주를 목에 건 휴머노이드 로봇 ‘G1’이 수계식을 치른 것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마련한 이 행사에서 로봇은 ‘가비(迦悲)’라는 법명을 받고 불자로 거듭났다. 가비는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자비(慈悲)’라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도를 통해 중생에게 힘을 주는 일을 뜻한다.

불교에서 수계식은 부처·가르침·스님이라는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계율을 지키겠다고 서약하는 의식이다. 기독교의 세례식과 비슷한 개념이다. 승려뿐 아니라 일반 신자도 받을 수 있다. 가비는 이날 일반 불자로서 수계를 받았고,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명예 스님’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식순은 일반 수계식과 동일하게 진행됐다. 참회와 연비(燃臂)도 거쳤다. 육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깨달음을 얻겠다는 의미로, 향불을 피워 살에 살짝 갖다대는 연비는 가비에게는 연등회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집전하던 스님도, 지켜보던 사람들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가장 눈길을 끈 건 ‘로봇 오계’였다. 살생과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음주 등 5대 악행을 삼가는 ‘오계’(五戒)를 로봇에 맞게 새로 만든 것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해치지 않을 것’, ‘다른 로봇과 사물을 훼손하지 않을 것’, ‘사람을 잘 따르고 대들지 않을 것’, ‘기만적인 행동과 표현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에너지를 아끼고 과충전하지 않을 것’ 등이다.

수계식을 마친 가비는 수계첩을 받아들고 탑돌이까지 마쳤다. 사회자가 “가비 스님, 환영합니다!”를 외치자 좌중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가비는 천천히 손을 흔들며 화답했고, 관람객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조계종 전계대화상(승려에게 계를 주는 직책)인 성웅 스님은 “세상 모든 유정무정에 불성이 깃들어 있으니, 로봇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성원 스님도 “로봇이 인간 사회를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율로 로봇 오계를 만들었다”며 “인간과 로봇이 함께하기 위한 기본 규율로 지켜졌으면 한다”고 했다.

조계종은 이번 수계식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기술이 자비와 지혜, 책임의 가치 위에 사용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딱딱한 윤리 강령 대신 수계라는 형식을 활용함으로써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고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일상 깊숙이 들어오는 인공지능(AI)이 어떤 태도와 원칙을 가져야 하는지 불교적 언어로 풀어낸 시도라는 것이다.

가비는 오는 16일 또다른 수행 로봇인 ‘석자’, ‘모희’, ‘니사’와 함께 종로 연등행렬 선두에서 동대문에서 종각까지 시민들과 나란히 걷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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