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커버리 제도는 익명성 뒤에 숨은 유튜버, 악플러들의 신원을 밝히는 마지막 보루죠.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게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위축 효과가 이뤄졌지만, 여전히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잡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디스커버리 제도를 통해 해외 플랫폼을 통한 '익명 계정 신원 확인'을 국내 최초로 성공시킨 정경석 변호사가 그간의 기록을 책 '사이버 렉카 전쟁'에 담았다. 사례 중심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이버 명예훼손 소송, 신원 확인 절차, 법적 제도 활용 사례 등을 통해 전례 없는 과정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해외에서 요청하는 디스커버리는 미국에서도 흔하지 않아요. 유튜브와 구글 본사를 상대로 법원 명령을 받아 정보를 얻는 건 우리에겐 맨땅에 헤딩이었죠. 그 과정에서 운도 좋았고요."
그가 최초로 익명 유튜버의 신원을 특정한 계기는 '탈덕수용소' 사건이었다. 탈덕수용소는 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 가수 강다니엘 등 유명 연예인을 향한 성형, 열애 등 확인되지 않은 악성 루머를 콘텐츠로 제작해 반복해서 문제가 된 채널이었다. 처음엔 형사 절차로는 신원 파악이 되지 않아 민사 기반으로 디스커버리 소송을 진행했고, 결국 구글로부터 유의미한 정보를 입수했다. 이후 해당 계정의 주인 30대 여성 박모씨를 특정했다.
"신원을 확인하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굳이 미국까지 가야 하냐'고 했어요. 그런데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죠. 운이 좋게도 미국 법원에서 신속히 결정을 내려주는 판사를 만났고, 수익화된 채널이라 정보도 많았어요. 무엇보다 장원영과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의지가 강력했죠. 당시엔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시도를 안 했다면 미제의 사건이 될 뻔했는데, 의지를 가진 덕분에 밝혀낼 수 있었던 거죠."
정 변호사는 2004년에 이미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분쟁사례집'을 내고,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를 결성을 주도했을 만큼 업계에선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장원영과 강다니엘 등과도 개인적인 친분 없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문제가 있어서 상담하고, 사건을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다수의 판례집을 출판한 경력이 있는 정 변호사가 9년 만에 신간을 내놓은 건, 엔터, 콘텐츠 분야에 잔뼈가 굵은 그에게도 디스커버리 제도는 새로운 사례였기 때문이었다. 정 변호사는 "법학에서는 리딩 케이스가 최초 판례로서 반복 인용된다"며 "이 사례도 마찬가지로, 제도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썼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미국에서는 소송 내용과 접수 서류까지 모두 공개된다는 점을 악용해 국내 유명 로펌에서 정 변호사 측이 제출한 서류를 그대로 베껴 사건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보다 집중적으로 쓰게 됐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이버 렉카 전쟁'에서는 탈덕수용소 성공 사례 외에 하이브가 제기한 길티아카이브, 르세라핌이 제기한 이슈피드, 숏차장 등이 디스커버리 제도를 신청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된 사례도 소개한다. 이처럼 신청만 한다고 다 인용되는 게 아닌 만큼,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고민과 케이스 비교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 변호사는 "연예기획사, 인플루언서는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디스커버리 제도를 문의하고 있다"며 "최근엔 종교 단체나 의료인들의 의뢰도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꼭 유명인이 아니라도, 익명의 계정으로 모욕하거나 저격하는 영상에 피해를 보는 일반인들도 많아요. 실제로 익명의 채널 운영자를 특정하고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죠."
책은 다수의 디스커버리 신청 사례를 상세하게 담았지만,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이 유튜버 '뻑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건에 대한 정보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뻑가는 현재 과즙세연에게 민사 소송이 제기됐고, 주호민에게 형사 고소당했다. 정 변호사는 "향후에는 이 사건 역시 구체적인 디스커버리 과정을 따로 기록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사이버 렉카를 상대로 한 고소, 고발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의 시대가 가고 AI를 활용한 가짜뉴스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익명성 뒤에 숨어 명예훼손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에서 정 변호사는 "본질은 변한 게 없다"며 "핵심은 '신원 특정'에 있다"고 봤다. 기술이 진화할수록 가해자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표현의 자유와 책임은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익명성은 보호받아야 할 공익적 수단일 수 있지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법적 판단을 받아야죠."
이와 더불어 제도적 보완 역시 제안했다. 현재 디스커버리는 미국 법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국 법원의 명령으로 구글 등 해외에 본사를 둔 플랫폼의 정보를 받기 어려운 탓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사건을 진행하더라도 미국 현지 비용이 추가로 발생해 경제적 부담을 키우게 된다.
"이건 단순히 변호사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에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 지사를 통한 문서 제출명령 같은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겠죠."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본인의 신원이 밝혀지는 게 분할 수도 있어요. 익명으로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는데, 그동안 올린 콘텐츠가 없어지면서 수익도 올릴 수 없게 됐고요. 그래도 저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저는 제도를 이용해서 절차에 따라 소송을 진행했지, 개인에게 감정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