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석유·가스·우라늄 사는 나라에 관세 500%" 美의회의 '초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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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 26일 러시아 공습으로 불타고 있는 민간 기업 시설이라며 배포한 사진.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난 26일 러시아 공습으로 불타고 있는 민간 기업 시설이라며 배포한 사진. /AFP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기 위한 협상이 쉽게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 휴전 협정이 성사되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풀어주고 경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 흔들리면서 미국 내에선 반대로 제재를 강화해서 러시아를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중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러시아산 원유나 우라늄을 구매하는 국가에 초고세율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초당적인 지지를 받아 발의됐다.

○“푸틴, 불장난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와의 휴전 협정은 커녕 오히려 더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해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푸틴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내가 없었다면 정말 나쁜 많은 일이 러시아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전날 푸틴 대통령을 향해 “완전히 미쳤다”고 직설적으로 비난한 데 이어 이틀 연속으로 푸틴을 향한 강경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푸틴 대통령과 2시간에 걸친 통화 후 “즉각 종전협상이 개시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드론 등 공습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양국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기대가 안이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미국이 러시아에 휴전 및 종전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현재 마땅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기자들에게 러시아 제재를 “절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 주변인을 인용해 백악관이 러시아 제재를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로 제재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지원사격 나선 상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타스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국무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타스연합뉴스

푸틴 대통령과 ‘밀당’을 해야 하는 백악관 대신 좀 더 직접적인 공격에 나선 것은 미국 상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화기애애하게 대화할 수 있는 ‘굿캅’ 역할을, 상원은 푸틴 대통령을 압박해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배드캅’ 역할을 나눠서 맡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린지 그레이엄 의원(공화·사우스캐롤라이나)은 이날 WSJ에 “미 상원은 푸틴의 게임을 참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레이엄 의원은 리처드 불루먼솔 의원(민주·코네티컷) 등 양당 정치인 82명의 공동 발의형태로 러시아 제재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법안은 러시아 원유나 우라늄을 구입하는 나라에 500%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가 저렴한 (러시아산) 원유를 사지 않는다면 푸틴의 전쟁기계는 멈출 것”이라며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그레이엄 의원은 적었다. 이어 “법안 준비 단계부터 백악관과 함께 조율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관세를 레버리지로 활용해 러시아와 협상의 공간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그레이엄 의원은 또 “모스크바의 깡패(푸틴)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른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푸틴이 게임을 계속한다면 상원은 행동할 것”이라는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사우스다코타)의 말을 인용했다.

단순한 역할극만은 아니다. 의회 내에서는 푸틴 대통령과의 ‘우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강경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공화·아이오와)은 X에 올린 글에서 “푸틴이 게임이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강력한 제재를 가할 때”라며 “하버드대에 보여준 것 같은 단호한 태도를 푸틴에 보여달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토드 영 상원의원(공화·인디애나)도 “러시아에 즉시 타격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 사우스캐롤라이나)이 지난 20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출석한 청문회에서 내년 예산에 관해 질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 사우스캐롤라이나)이 지난 20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출석한 청문회에서 내년 예산에 관해 질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韓, 러시아 우라늄 2위 수입국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애매하게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상원이 관세 폭탄을 부과하려는 러시아산 에너지가 우라늄을 대상으로 거명하고 있고, 전 세계 농축우라늄의 44%를 공급하는 러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여서다.

2023년 기준으론 미국이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의 최대 수입국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미국이 수입량을 줄이면서 작년에는 중국이 세계 1위, 한국이 2위, 미국이 3위 수입국으로 순위가 바뀌었다. 미국은 2028년부터 러시아산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수입량을 급격히 줄여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산 원유와 우라늄을 수입한다는 이유로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도 타깃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 원자력 산업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정학적 변화를 감안해 2031년부터 미국산 농축우라늄 수입을 늘리는 등 공급선을 다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인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압박용 제재에 즉각 대응하긴 쉽지 않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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