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대만 섬 남쪽 해안가에서 태평양으로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배 하나에 목숨을 내맡긴 채 망망대해로 나아간 이들은, 세대를 거듭하며 괌과 하와이 등 드넓은 바다에 있는 수많은 섬을 하나하나 개척해 나갔다. 폴리네시아인이란 이름으로 불린 이들에게 바다는 길이었고, 해류와 별과 바람은 길잡이였으며, 땅과 동식물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였다.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나 모아나’는 폴리네시아인들이 오세아니아에서 만들어낸 카누, 조각, 석상, 악기 등 독창적 유물 170여 건을 소개하는 전시다. 유물들은 세계 최고 오세아니아 유물 컬렉션을 보유한 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박물관에서 빌려왔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내에서 오세아니아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전시 제목인 ‘마나 모아나’의 ‘마나’는 폴리네시아인들이 생각하는 세계를 움직이는 힘이자 초자연적인 영적 에너지를, ‘모아나’는 거대한 바다를 뜻한다. 전시를 기획한 백승미 학예연구사는 “오세아니아 예술과 유물에 담겨 있는 보이지 않는 힘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설명하는 제목”이라고 말했다.
처음 전시장에 들어서면 벽면과 바닥에 상영되는 영상을 통해 배를 타고 오세아니아의 낯선 섬에 도착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어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섬들처럼 곳곳에 배치된 전시 쇼케이스가 관객을 맞는다. 지난 3월 폐막한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의 대성공에 일조한 홍예나 디자이너의 솜씨다.
전시 첫 부문은 바다와 관련된 유물이 주를 이룬다. 카누 부품과 모형 등이 나와 있다. 대양을 항해하는 이들에게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준 항해용 나무 막대 지도를 주목할 만하다. 나무 막대로 바닷길, 조개껍데기로 섬의 위치, 곡선으로 파도의 굴절, 직선으로 해류의 흐름을 표시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조상 숭배와 교환 의례 등 공동체 의식과 관련된 유물(사진)이 등장한다. 소년들이 성년식을 치를 때 쓰는 가면 ‘므와이’가 대표적이다. 3부와 4부에는 장신구와 조각상 등이 나와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문자가 없었던 오세아니아 문화에서 예술품은 사회적, 정치적, 영적 기억을 담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회화와 사진 등 현대미술 작품들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신선함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겸비한 유물들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오디오가이드가 준비돼 있어 어린이와 함께 즐기기도 좋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성수영 기자/사진=김범준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