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간 죽어서도 떠돌 것만 같다 죽은 자의 영혼이 존재한다면
찢어진 투명한 그물처럼 담장 위에 걸려 생각 없이 영원히 휘날릴 것만 같다
어느 날 도둑이 그 담장을 넘어 빈집을 넘봐도 나의 영혼은 힘도 못 쓸 것 같다 도둑도 마음도 아까 놓쳐버린 것 같다 다 큰 자식도 못 알아볼 것 같다아내를 잊고 싶지 않다 그녀를 깨워서 같이 밥 먹고 물 마시고 키스하고 싶다
하지만 어느 날 끝내 잠에서 못 깨어난 그녀가 스르르 담을 타고 집을 나가도 모를 것 같다 내가 기다리는 것들 다 사라졌는데 영원히 휘날리며 기다릴 것 같다
개 짖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몇십 년에 걸쳐 조금씩 더 찢어지는 것 같다―김상혁(1979∼ )화자는 모래 위에 성을 쌓은 사람처럼 불안해 보인다. 그게 모래 위일지라도 성은 자명하다. 불확실한 건 “죽어서도 떠돌 것만 같”은 마음이다. 그는 죽은 이후의 “찢어진 투명한 그물”이 된 영혼의 상태를 상상한다. 영혼이 된 그의 집에 도둑이 든다 해도 여전히 무력하다. “도둑도 마음도 아까 놓쳐버린” 까닭이다. ‘아까’는 언제의 시간일까? ‘아까’는 과거이자 현재, 미래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모든 시간에, 그는 무언가를 놓쳤고 놓치고 놓칠 것이라는 두려움. 그가 놓친 것은 모든 것일 수도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다.
이 삶이 오롯이 내 것이라는 충일감을 갖는 일은 왜 이리 어려울까? 살아가는 동안 무언가 중요한 것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는 감각,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피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생활을 차곡차곡 꾸리는 일, 기다리는 것이 오지 않아도 ‘오늘이라는 제자리’에서 “영원히 휘날리며” 그것을 기다리는 일뿐이리라.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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