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떤 국가도 콘텐츠사업자(CP)가 자국 인터넷서비스업체(ISP·통신사)에 보내는 인터넷 트래픽에 대해 네트워크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을 제외하면(Except Korea).”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28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의 파장이 크다. 한국의 ‘무역 장벽’을 지적하기 위해 해외 빅테크가 국내 통신사와의 갈등 과정에서 내세운 반박 논리인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을 강조한 것이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사들이 인터넷 트래픽을 양, 유형, 제공자, 발원지, 목적지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온라인의 급격한 개화 과정에서 ‘인터넷 개방성’의 핵심 기반으로 여겨졌다. 2019년 시작된 SK브로드밴드와의 소송에서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며 꺼내든 주요 논리다. USTR은 이 개념을 가져와 ‘전 세계에서 한국만 망 중립성을 무시하며 빅테크를 규제하려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빅테크 성장에 흔들리는 망 중립성
망 중립성이란 용어는 2003년 팀 우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가 탄생시켰다. 초기 인터넷이 빠르게 확산하던 시기였다. 우 교수는 당시 ‘공룡’ 통신사들이 특정 콘텐츠나 신생 제작사를 차별하면 인터넷 혁신이 크게 저해될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통신사들은 통신 사업에 그치지 않고 콘텐츠와 미디어 분야까지 소유하며 몸집을 불리려 했다. 이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망 중립성 또한 주류 개념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 인스타그램 등 빅테크 소유 CP들의 덩치가 급격히 커진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과거 규제 대상이던 AT&T, 컴캐스트 등 통신사들이 대규모 망 투자만 계속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반면 보호 대상이던 유튜브, 넷플릭스 등은 수십억 사용자를 등에 업고 막대한 수익을 내는 콘텐츠 공룡이 된 것이다. 망 중립성 개념을 창안한 우 교수도 2018년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빅테크의 폐해를 지적한 저서 <빅니스: 거대 기업에 지배당하는 세계>를 펴냈을 정도다.
기약 없는 투자로 사실상 CP를 지원하는 신세가 된 미국 통신사들은 결국 “정부는 통신망을 공공재로 묶어 규제할 권리가 없다”며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공방 끝에 지난해 미국 제6연방순회항소법원은 “망 중립성에 대한 FCC의 명령이 권한을 넘어섰다”며 통신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빅테크 계열 CP들로부터 통신사가 망 사용료를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긴 셈이다. 이후 망 중립성 대신 비용 부담 형평성에 초점을 맞춘 ‘망 공정기여’(fair share) 개념이 힘을 얻고 있다는 평가다.
통신사들이 주로 부담하는 보편적서비스기금(USF) 재원을 빅테크 CP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에서 커지고 있다. USF는 농어촌이나 저소득층의 통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기금으로, 연간 85억달러(약 12조5000억원)에 달한다. 통신사뿐 아니라 이들이 구축한 망을 사용하면서 수익을 내는 CP들도 해당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달라진 넷플릭스 등 빅테크
국내에서도 평행선을 달리던 통신사와 CP의 입장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넷플릭스와 KT는 수차례 접촉해 망 사용 대가를 도출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성 망 사용료보다는 요금제나 결합상품 등에서 제휴 조건을 조정하고 각자 몫을 재배분하는 방향이 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당장 결론이 날 단계는 아니지만, 각자 입장이 완고하던 양측이 논의를 시작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넷플릭스와 통신사들의 ‘해빙’ 분위기가 형성된 계기는 지난 3월 열린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공연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말부터 국내 통신사들에 “대형 라이브 이벤트를 기획 중”이라며 자사와 연동된 네트워크망 확충을 요청했다. 논의가 지지부진하던 가운데 올 1월 넷플릭스가 공연 주인공이 BTS라는 걸 공개하면서 통신사들의 망 투자는 급물살을 탔다.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연결되는 해저케이블을 두 배 이상 늘리는 등 통신 3사는 BTS 공연을 위해 1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네트워크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사 관계자는 “국가적 이벤트인 만큼 우선 통신장애 없이 라이브 공연을 치르고, 이후 망 공동 투자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생각이었다”고 했다.
BTS 공연 이후 망 공동 투자에 대한 넷플릭스의 반응도 달라졌다고 한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계에선 넷플릭스의 라이브 확대 전략을 변화 이유로 꼽는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골라 보는 기존 주문형비디오(VOD)와 달리 대규모 동시 접속자가 몰리는 라이브 중계는 네트워크가 원활하지 않으면 OTT 신뢰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빅테크 CP들도 국내 통신사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넷플릭스는 올해 초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의 일본 내 독점 중계권을 확보해 전 경기를 생중계했다. 넷플릭스는 지난 17일 열린 올해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일본에서 보유한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이 시청한 콘텐츠가 WBC”라며 “광고 수익에 큰 힘이 됐다”고 밝혔다. 국내 OTT업계에서는 현재 티빙이 보유한 국내 프로야구 중계권을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대규모 물량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 또한 빅테크의 망 기여 논리에 힘을 싣고 있다. AI는 텍스트뿐 아니라 동영상, 이미지 등 멀티모달 데이터가 양방향으로 오가면서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트래픽이 발생한다. 2023년 기준 유튜브를 포함한 구글이 국내 유무선 트래픽의 31%를, 넷플릭스가 7%를 차지했다. 스포츠 중계와 AI 기술이 퍼진 지금은 두 회사 트래픽이 국내 전체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통신업계는 보고 있다. 데이터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통신사들은 망 사용료 문제 해결에 절박하게 나설 수밖에 없다.
박한신/라현진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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