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찬 학화1934 대표
증조부모 일제강점기 때 창업
92년째 천안서 호두과자 외길
축구 유학서 돌아와 4代 승계
스마트 제조로 생산성 33%↑
말차 등 앙금 다양화 MZ 공략
美·베트남 등 해외 공장 추진
간판에 얼굴을 넣은 집은 실패가 적다. 본인 얼굴을 걸만큼 품질을 자신한다는 뜻에서다. 천안 호두과자 브랜드인 ‘할머니학화호도과자’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간판과 패키징을 자랑한다. 옥색 한복을 입고 자애롭게 웃는 백발의 할머니 얼굴이 강력하다.
최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학화1934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조경찬 학화1934 대표는 고 심복순 할머니의 4대손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제과기술자였던 증조부 조귀금 씨가 천안 호두를 활용해 보자는 아내 아이디어에 호두와 팥앙금을 넣은 과자를 만든 게 시작이었다. 4대에 걸쳐 92년간 명맥을 이어 오며 하루 평균 10만개를 만드는 전국구 호두과자집이 됐다. 천안에만 8개 직영점, 서울 명동과 강남에도 매장을 운영한다.
‘호두과자집 손자’는 원래 가업을 이을 생각이 없었다. 독일에서 축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축구교실을 운영하던 중이었다. 그는 집안 어른들의 부름을 받고 반강제 입사했다. “당연히 반항했죠. 어린 마음에 ‘내가 왜 힘들고 어려운 데서 일해야 되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본부터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 틀리지 않더라고요.”
사원으로 입사해 새벽부터 팥을 삶아 앙금을 만들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호두과자를 구워 판매까지 전 과정을 거치니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둘 생겼다. 10년치 사업계획서를 A4용지로 4~5장 빽빽이 작성해 정식으로 발표했다. 첫 시도는 앙금 종류 늘리기. 지점마다 고유의 앙금 한 개씩만 판매하다 보니 다른 앙금을 찾는 고객은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앙금 만드는 공정을 추가해 본점에서도 다른 지점에서 인기 있는 흰 앙금을 팔았더니 본점 기준 매출이 1.5배 뛰었다. 변화에 심드렁했던 생산직 직원들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동력을 얻은 그는 ‘학화’라는 브랜드 역사를 정리하고, 패키지를 변경하는 브랜드 리뉴얼에 착수했다. 조 대표는 “오래된 가게라는 점만 강조하고 싶진 않았다”며 “홈페이지를 열어 창업 스토리를 알리고, 그간 지켜온 정성과 초심을 부각시켰다”고 했다. 기성품 앙금 대신 새벽에 가마솥에서 수작업으로 만드는 100% 팥앙금과 24시간 저온숙성하는 디테일도 알렸다.
조 대표가 취임한 후 4050 위주였던 소비자가 차츰 젊어졌다. 전통 팥앙금에 더해 말차, 슈톨렌, 딸기, 인절미, 앙버터 등 다양한 앙금의 신메뉴를 내놓았고, 온라인 판매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29CM와 서울 성수동에서 디저트 팝업에 참여했고, 올 초에는 연세유업과 컬래버한 ‘연세우유 호도 생크림 빵’을 출시해 히트를 쳤다. 현재 학화호도과자 구매자 중 20·30대 고객은 50%에 육박한다. ‘할머니 얼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통장 잔고를 보며 흐뭇해진 ‘자본주의 미소’”로 소문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호두과자 제조 설비로도 차별화를 시도했다. 1980~1990년대 만든 틀에 사람이 반죽을 붓고 팥앙금을 넣는 방식으로는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는 “매년 인건비가 오르고, 식품회사에서는 품질이 중요한데 언제까지 감과 노하우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봤다. 중소벤처기업부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을 신청해 기계 설계부터 다시 했다. 설비에 센서를 붙여 과자 굽는 온도를 확인하고, 비전 카메라를 두고 불량품을 걸러냈다. 생산성은 기존 대비 33% 높아지고, 20%에 달했던 불량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며 손실이 약 11억원 줄었다.
스마트 제조를 도입하며 ‘해외 공장 설립’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한국에서 인공지능(AI)으로 컨트롤하는 공장 모델을 만들면 해외에 공장을 세우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는 “현재 미국, 캐나다, 베트남, 태국 등에 냉동 상태로 수출하는데, 5년 내 공장을 현지에 세워 갓 구운 호두과자를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까지는 수출 제품명을 ‘K-월넛케이크’로 내보냈지만, 지금은 ‘호두과자’로 표기한다. 더 젊고 발랄한 세컨드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그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현재 그가 파악한 호두과자 시장은 7000억~1조원 규모. 92년 가업을 짊어진 그의 중장기 목표는 호두과자 시장 규모를 키워 회사를 100년까지 잘 이끄는 것이다. “부모님이 항상 어깨가 무겁다고 하셨던 걸 이제 이해하겠더라고요. 선대가 잘 키워 온 회사를 제 대에서 망하지 않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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