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증시가 질주하고 있다. 최근 1년간 상승률이 유럽 대형주 지수인 유로스톡스50의 세 배에 달한다. MSCI 선진국 지수 상승률도 웃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독일 정부가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쏟아내면서 독일 증시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 거침없는 독일 DAX
독일 DAX 지수는 27일(현지시간) 24,226.49에 거래를 마쳤다. 1년 전(2024년 5월 26일)보다 29.0% 올랐다. 같은 기간 유로스톡스50(7.7%)과 MSCI 선진국 지수(14.3%) 상승률을 크게 웃돈다. 미국 S&P500(11.6%)보다 두 배 이상의 상승폭을 기록했다.
특히 방위산업, 에너지 업종의 가파른 상승세가 독일 증시를 이끌었다. 군수업체 라인메탈은 지난 1년 동안 무려 266.7% 올랐다. 발전 및 송전 시설을 생산하는 지멘스에너지AG는 같은 기간 221.4% 상승했다. 건축자재 기업인 하이델베르크머티리얼즈(86.7%), 도이치방크(58.1%) 등도 1년 새 주가가 50% 넘게 뛰었다.
국내 증권사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독일 관련 펀드 수익률도 순항하고 있다. ‘키움 독일 DAX 상장지수펀드’(ETF)와 ‘베어링 독일 증권자투자신탁’의 최근 1년 수익률은 각각 33.3%, 20.6%를 기록했다. 독일 주식 비중이 59.9%인 ‘KB스타 유로 인덱스 펀드’는 같은 기간 8.7% 수익률을 거뒀다.
이 같은 증시 상승세와 달리 독일 경제는 침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독일 경제성장률은 2023년과 지난해 각각 -0.3%와 -0.2%를 나타내며 2년 연속 역성장했다. 올해 경제 전망도 밝지는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독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3%에서 0%로 하향 조정했다.
◇ 대규모 재정 투입 효과
독일 증시가 상승한 요인은 복합적이다. 최근 DAX지수를 끌어올린 건설업, 방위산업 등은 정부 정책의 수혜주로 꼽힌다. 독일 의회는 지난 3월 역대 최대 규모 경기 부양책으로 꼽히는 5000억유로(약 778조원) 인프라·국방 투자를 위한 기본법(헌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소프트웨어, 금융 등 기존 주력 산업도 탄탄한 실적으로 독일 증시를 뒷받침했다.
ECB의 잇따른 금리 인하도 독일 증시의 상승 동력이 됐다. ECB 기준금리는 작년 4월 4.50%로 정점을 찍고 지난달 2.40%까지 내려갔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27일(현지시간) 한 행사에서 “5월 프랑스의 인플레이션 추정치가 0.6%로 낮게 나왔다”며 다음달 ECB의 추가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일본은 최근 국채 리스크에 노출돼 있지만 독일은 국채 금리는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추가 상승 여력은?
독일 DAX 지수는 전문가들의 기존 전망치를 이미 넘어섰다. 도이치방크는 지난해 11월 DAX 지수가 올해 말까지 20,500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봤다. HSBC는 작년 12월 21,000을 예상했다. 영국 거시경제 리서치 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는 3월 DAX 지수의 올해 최고치를 22,000에서 25,000으로 상향 조정했다.
업종별로는 방위산업이 유망 종목으로 꼽힌다.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의 5%로 대폭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다. 독일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규모 인프라 기금 집행을 시작하면 건설업, 전력산업 등이 수혜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연구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미국 국채 금리가 하향 안정화할 때까지 글로벌 자금의 독일 증시 선호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