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국방비 한도 풀어 재무장 시동…790조원 인프라 투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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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 녹색당이 14일(현지시간) 12년간 5000억유로(약 790조원)에 이르는 정부 재정을 인프라에 투자하고 국방비를 사실상 무제한 증액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법(헌법) 개정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유럽에서 안보 불안이 커진 가운데 독일이 재무장에 나서는 것이다. 독일 경제연구소들은 이번 합의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독일 경제성장에도 플러스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

독일 국방비 한도 풀어 재무장 시동…790조원 인프라 투자도

◇獨, 국방비 차입 제한 해제

이번 개정안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국방비 증가를 제한하는 ‘부채 브레이크’ 폐지다. 기존 규정에선 정부의 신규 부채를 연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0.35%로 제한했다. 개정안은 국방비에 한해 이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나랏빚을 늘리더라도 국방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독일에서 부채 브레이크가 해제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현재 독일 정부의 정규 국방 예산은 연간 500억유로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정규 예산과 별도로 투입된 특별예산 1000억유로는 2027년 소진될 예정이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는 미국 지원 없이 독일이 자체적으로 국방비를 충당하려면 현재 정규 예산과 특별예산을 합쳐 연간 800억유로(GDP의 2.1%) 수준인 국방비를 최대 1400억유로(GDP의 3.5%)까지 증액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개정안에는 5000억유로 규모 인프라 예산도 포함됐다. 이는 지난해 독일 전체 예산(4657억유로)을 넘는 금액이다. 이 예산은 교통, 에너지, 교육, 복지, 과학 인프라 투자에 사용될 예정이다. 이 중 1000억유로는 기후변화 대응 및 경제 구조의 친환경 전환을 위해 배정됐다. 녹색당 동의를 얻기 위해 기존 500억유로에서 두 배로 증액했다.

헌법 개정은 연방의회 재적 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해 차기 연립정부 구성을 논의 중인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은 녹색당의 찬성표를 확보하려고 협상해왔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당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독일이 돌아왔다”며 “파트너와 친구뿐만 아니라 반대자, 자유의 적에게도 우리가 스스로 방어할 준비를 갖췄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 기대감…증시·유로화도 강세

유럽 국가들이 잇달아 대규모 군비 증강과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재정정책에 보수적이던 독일마저 적극적인 지출 확대에 나서며 기대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이날 협상 타결 소식에 독일 닥스40지수는 1.65% 상승하고 유럽 종합지수 스톡스600은 1.14% 올랐다. 유로화 역시 달러 대비 최근 10일간 4% 가까이 상승해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하락분을 대부분 회복했다.

독일 경제 연구기관들은 지출 증가분을 반영해 경제 성장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킬세계경제연구소는 내년 독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높였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기존 전망치 0.9%에서 큰 폭으로 상향 조정했다. 독일경제연구소(DIW)는 “이번 인프라 기금만으로 향후 10년간 독일 GDP가 2%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DIW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1.1%에서 2.1%로 올렸다.

일각에서는 급격한 재정 확대가 부채 증가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니엘 하트만 반틀레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개정안은 독일 재정 정책의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경제 성장에 새로운 추진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인플레이션 위험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럽 싱크탱크 유로인텔리전스는 “이번 개혁은 사실상 채무 제한 폐지”라며 “장기적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는 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임다연 기자 all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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