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인간, 감정과 기술의 경계 고찰
26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공연 중 핸드폰 촬영 가능합니다, 공연 중 입퇴장 가능합니다.”
콘템포러리 연극 집단 음이온의 신작 ‘스와이프!’는 시작부터 기존 극장의 규칙을 뒤엎는다. 서울아트마켓(PAMS) 전막 공연으로 선보인 이번 작품은 AI와 로봇이 일상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사후 데이터를 업로드해 되살아난 아버지와 유령으로 나타난 또 다른 아버지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햄릿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두 존재 사이에서 “무엇이 진짜이며, 무엇이 가짜인가”를 묻지만, 이미 눈앞에 공존하는 이 시점에서 그런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작품은 인간이 AI 에이전트와 사물인터넷이 지배하는 시대에 어떤 감정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예측 불가능한 서사 속에서 햄릿은 아버지를 통해 죽음을 사유하다가도,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상대와의 원격 관계 속에서 ‘진짜 곁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던 햄릿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스와이프!’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재해석이라기보다, ‘아버지의 유령’과 ‘우유부단한 주인공’이라는 핵심 모티프를 빌려온 현대적 변주에 가깝다. 수많은 정보와 알고리즘이 범람하는 세계 속에서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의 초상처럼 다가온다.
무대에는 미디어 아티스트 다이애나 밴드가 설치한 자율 사물들이 놓여 있다. 탁구공이 스스로 움직이고, 낚싯대가 진동하며, 커다란 양철판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별도의 조작 없이 라디오 신호로 상호작용하는 이 사물들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비인간 주체’로 존재하며, 배우들은 그 사이를 피해가거나 교감하며 극을 이끈다. 무대는 인간과 사물, 기술과 감정의 경계가 교차하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무대 뒤편에서는 카메라로 촬영한 실시간 영상이 대형 스크린으로 송출된다. 배우들은 후면 카메라를 향해 연기하다가 다시 무대 전면으로 나서며 극장 전체를 종횡무진 누빈다. 관객은 스크린과 무대, 그리고 끊임없이 진동하는 사물들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통적인 극장의 ‘시선의 위계’가 해체된다.
최근 공연예술계에서는 ‘동시대성’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그것이 구현될 수 있을까. 음이온은 그 질문을 가장 급진적으로, 연극의 규칙을 완전히 뒤집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공연 중 스마트폰 촬영과 입퇴장이 자유롭다. 관객은 극장 안에서도 외부 세계와 단절되지 않는다. 각자의 인상적인 장면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찰칵 하는 셔터음, 무대 위 사물의 진동, 배우의 대사가 뒤섞이며 또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연극은 외부와 차단된 성소로서의 극장이 과연 필요한가를 되묻는다.
AI와 인간, 기술과 감정, 현실과 유령의 경계를 스와이프하듯 넘나드는 이 작품은 한국 동시대 연극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스와이프!’는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6일까지 공연된다. 아트마켓을 찾은 해외 관계자들로부터도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가장 예리하게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포스트휴먼 시대의 연극 언어를 제시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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