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마켓in 권소현 센터장]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은데, 그나마 괜찮은 중견·중소기업 찾아가면 사채꾼 아니냐며 문전박대 당합니다. 힘든 시기에요.”
최근 만난 사모펀드 심사역이 늘어놓은 푸념이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이어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으로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이슈가 되다 보니 사모펀드에 대한 이미지가 사채꾼으로 굳어지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으면 기업 망가지는 건 순식간 아니냐는 거부감 가득한 반응이 상당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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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
사모펀드업계는 요새 숨 쉬는 것마저도 조심하는 상황이다. 매년 이데일리가 기관투자자(LP)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최우수 사모펀드를 선정하는 금융투자대상(캐피탈마켓부문)에서도 이같은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최근 설문조사를 마치고 결과를 토대로 각 부문별 1위를 한 곳들에게 수상 소식을 전달하자 LP들이 뽑아준 상이라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는 곳이 상당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지금은 잘했다고 해도 타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국회의원실에서도 계속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고,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전수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니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하다.
사모펀드들이 이렇게 위축되면서 딜 소화도 잘 안되고 있다. 매도측과 매수측의 몸값에 대한 시각 차이도 있지만, 눈치보기 나선 국내 PEF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도 크다. 대형 딜에 뛰어들었다가 괜히 눈에 띄는 것보다는 당분간 조용히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그린 사업부, SK에코플랜트의 환경 사업부, DIG에어가스, 롯데카드, 클래시스, HPSP 등 조단위 매물들이 새 주인을 찾고 있지만 원매자로는 글로벌 PEF들이 주로 거론되는 이유다. 그 사이 투자가 필요하거나 사업부를 매각해야 하는 기업들은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 사태는 사실 사모펀드 제도나 기능의 문제라기 보다는 특정 사모펀드, 특정 사례의 문제다. 이번 사태로 사모펀드의 순기능이 묻히는 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사모펀드는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에 적기에 자금을 공급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돕거나 경영권 바이아웃을 통해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통합(PMI) 작업을 통해 체질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LP들의 운용 수익률을 높여주는 데에도 기여했다. 블라인드펀드의 내부수익률(IRR)이 두자릿수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런 순기능을 못 본 척하고 다 싸잡아 매도할 필요는 없다.
MBK파트너스에게 홈플러스나 네파, 딜라이브 등은 아픈 손가락이었지만 두산공작기계, ING생명처럼 잘 키워서 높은 수익률로 엑시트했던 사례도 있다.
사모펀드 업계 스스로도 지금의 기업사냥꾼 이미지를 벗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사모펀드가 순기능을 이어갈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줄 필요도 있다. 자율성은 사모펀드가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나무만 볼 게 아니라 전체 숲을 봐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