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다가오는 '제로성장' 눈 뜨고 당할텐가

2 days ago 7
  • 등록 2025-04-14 오전 5:00:00

    수정 2025-04-14 오전 5:00:00

[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기가 불황일 때 빈 병에 화폐라도 채워 땅에 묻으라고 했다. 그 위에 쓰레기를 덮어두고 기업에 이를 파내도록 맡긴다면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할 수 있다면서다.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논리다.

한국 경제와 관련한 숫자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빈 병이라도 파묻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전까지만 해도 1%대 중후반에 머물렀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어느새 0%대까지 내려앉았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JP모건은 일주일 만에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0.9%에서 0.7%까지 낮췄고 씨티는 지난주 성장률을 1.0%로 낮춘 지 하루 만에 다시 0.8%로 하향한 전망치를 내놓았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원·달러 환율도 거듭 새 기록을 쓰며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이후 치솟았던 환율은 탄핵 국면이 진정됐음에도 9일 종가기준으로 1484.1원을 기록하며 금융위기였던 2009년 3월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썼다.

현재 국내 경제를 흔드는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관세 전쟁이다. 글로벌 IB가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0%까지 끌어내린 이유는 미국의 상호관세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던 환율은 상호관세 유예 소식에 하루 30원 가까이 급락하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 마디에 성장률과 환율 등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이다.

물론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흔들리는 것이 우리 경제만은 아니다. 뚜렷한 대응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인 것도 대부분 나라가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이 처한 현실이 문제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4일 탄핵 선고까지 4개월간 정국 불안이 이어졌고, 앞으로도 콘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을 6월 대선까지는 끌고 가야 한다.

상호관세가 유예됐다고는 하지만 콘트롤타워 부재 속에서 제대로 된 대미 관세 협상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많은 전문가가 관세 협상에서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아라’라고 하지만 신정부 출범을 앞두고 줄 것을 얼마나, 어디까지, 어떻게 줄지 결정하는 게 쉬울 리 없다.

0%대까지 내다보는 경제성장률에 대한 전망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 상호관세에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아시아를 향한 수출까지 둔화하는 간접적 영향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서다. 또, 국내 경제성장률에 대한 전망이 낮아질수록 한국은행도 추가 금리 인하를 고민할 수밖에 없고, 이는 원·달러 환율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낮아지는 경제성장률을 방어할 방법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빈병을 땅에 묻는 것보다는 효율적인 ‘추가경정예산(추경)’이다.

최근 나온 연구는 정부가 지출을 1원 더 늘리면 국내총생산(GDP)가 1.45원 증가할 것으로 봤다. 정부가 계획한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집행하면, 올해 성장률을 0.5%포인트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추경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을 표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다만, 경제가 급격하게 악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속도가 문제다. 제때 집행해야 경기 회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주 추경안을 국회 제출할 예정이다. 필수 추경이 정쟁에 막혀 더 미뤄진다면, 빈병을 땅에 묻는 것보다 못한 효과가 날 수도 있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