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트럼프의 ‘원스톱쇼핑’ 협상, 한국 등 동맹들 신뢰 훼손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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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레이브스 전 미국 상무부 부장관
상호관세, 무역을 ‘제로섬’ 거래로 만들어
美, 통상정책 동맹과 협의해 진행해야
방위비 등 관세협상 연계는 혼란 불러
관세보다 인력개발과 공급망 투자가 필요
韓은 AI 등 미래 분야의 핵심 파트너

돈 그레이브스 전 미국 상무부 부장관은 21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두고 “미국의 경쟁력을 뒷받침해 온 동맹과 경제 생태계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1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상무부 부장관으로 활동하며 미국의 공급망 정책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2021년 1월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월밍턴에서 바이든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고문 자격으로 한 행사에 참석해 발표하는 모습. 월밍턴=AP뉴시스

돈 그레이브스 전 미국 상무부 부장관은 21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두고 “미국의 경쟁력을 뒷받침해 온 동맹과 경제 생태계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1년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상무부 부장관으로 활동하며 미국의 공급망 정책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2021년 1월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월밍턴에서 바이든 당시 대통령 당선인의 고문 자격으로 한 행사에 참석해 발표하는 모습. 월밍턴=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융단 폭격’에 전 세계가 혼란스럽다. 고강도 관세 정책의 후폭풍은 관세 진원지인 미국에도 부메랑처럼 몰아닥쳐 타격을 주고 있다. 주가 폭락에 이어 미 국채 투매가 벌어지는 등 시장이 요동치고, 미 재계의 우려도 증폭되고 있는 것. 이 같은 자국 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끝없는 ‘관세 폭탄’을 예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중(對中) 관세율 조정을 직접 언급하는 등 숨 고르기에 나선 모양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일본 등 협의에 나선 국가에는 가능한 모든 카드를 활용해 압박하며 조속히 성과를 내겠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통상 협의를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통상은 물론 안보 문제 등도 ‘패키지’로 묶어 협상 테이블에 모두 올리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1년 5월부터 올해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전까진 상무부 부장관으로 활동했던 돈 그레이브스 전 부장관은 이 같은 ‘원스톱 쇼핑’ 접근 방식이 “한국 등 동맹들의 신뢰를 훼손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경제적 결정과 무관한 정치 문제로 동맹국들을 인질로 잡지 않는다는 확신도 그들에게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관세와 연계해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경우, 동맹 관계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이 전달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레이브스 전 부장관은 변호사 출신으로 1997년부터 2년간 재무부 정책 고문을 맡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4년부턴 대통령 직속 ‘일자리 및 경쟁력 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의 수석 고문이자 국내 경제정책 디렉터로 활동하며 경제정책 기획 및 집행에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상무부 부장관 재임 시절 국가 공급망 전략 수립을 총괄했다. 당시 미 제조업 강화를 위한 통상 정책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인터뷰는 21일(현지 시간) 서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 중인 관세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를 앞세운 통상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경제정책과는 명확하게 궤를 달리하는 접근이다. 미국의 경제정책은 그동안 파트너십, 협력, 다자주의, 국제 규범 등을 중심에 두고 이뤄졌다. 물론 불공정 무역 관행을 바로잡거나 전략 산업을 자국으로 유치하겠다는 건 역대 미국 행정부들이 공유해 온 목적이긴 하다. 다만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은 미국의 경쟁력을 뒷받침해 온 동맹과 경제 생태계를 악화시킬 위험을 가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관세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여전히 미중 간 통상 전쟁 양상은 정면충돌을 불사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치킨게임’ 같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로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순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이미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기술 디커플링(탈동조화) 등으로 압박받는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불확실성까지 더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반도체 수출 통제, 핵심 광물 공급망 등에서 미국과 전략적으로 공조해 온 한국 같은 동맹들에는 이 같은 예측 불가능성이 우려스러운 신호로 작동하게 된다.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음에도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불안도 계속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장기적 전략이 아닌, 경제적 (협상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한 도구로 보여 더 걱정스럽다.”

이달 2일 트럼프 행정부는 교역 상대국들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각국의 관세·비관세 장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세율을 산정해 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론 미국을 상대로 흑자를 많이 내는 나라일수록 높은 세율을 매기는 단순한 계산법을 적용한 것으로 드러나 큰 논란이 됐다. 미국 상품이 경쟁력이 부족해 시장에서 밀린 것까지 ‘불공정 무역장벽’ 탓으로 돌린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다. 관세율 산정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상호관세 개념은 직관적으론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실제로는 무역 관계를 결국 제로섬의 거래로 전락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 오늘날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 오랜 파트너십의 가치, 협력을 통한 경제적 시너지 등 현실을 외면하는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강도 관세 정책이 한국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상호관세 같은 프레임이 국제무역 관계에서 표준이 된다면, 특히 전기차·배터리·첨단 제조업과 같은 자본집약적 고성장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주도해 온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 또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의 관세 정책이 미국 제조업 부활을 이끌 것으로 믿고 있다.

“한국 기업들을 예로 들어 보자. 이들이 미국 내 핵심 산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관세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법적 안정성, 소비시장, 예측 가능한 법치 전통 등을 신뢰하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거다. 만약 미국이 스스로 이러한 예측 가능성을 훼손한다면 우리가 보유한 투자의 신뢰 기반 역시 함께 무너질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관세 부과와 미중 무역 갈등으로 미국의 동맹인 한국, 일본 등에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은 미국의 동맹들에는 분명히 어려운 선택을 요구한다. 그런 만큼 미국은 통상 정책을 풀어 나갈 때 정밀하게, 그리고 동맹과의 협의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단순한 경제 파트너가 아니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5G, 그린에너지 등 미래 성장을 이끌 핵심 분야에서 기술적으로 미국과 대등한 국가다. 미국의 정책은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이런 국가들의 가치를 무시하는 관세 정책이 중국에 일시적인 비용은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일본 등 미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히 얽힌 동맹들에 끼칠 부수적 피해도 분명히 걱정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첫 통화에서 한국과의 협상을 ‘원스톱 쇼핑’으로 표현하며 “아름답고 효율적인 절차”라고 했다. 상호관세를 협상 지렛대로 조선업 협력과 에너지 구매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까지 함께 논의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뒤 “한국은 내 첫 임기 중 처음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기 시작했고, 이는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관세 협상과 연계하려는 듯하다.

“그러한 구상은 전략적 일관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걱정스럽다. 주한미군 방위비 같은, 통상과 전혀 다른 지정학적 문제를 관세와 결합해 추진할 경우 (미국과 상대국 모두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안보 의무를 부과하려는 건지, 무역 제재를 하겠다는 건지 분명치 않으면 전략적 일관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원스톱 쇼핑’ 구상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른바 ‘원스톱 쇼핑’ 외교 접근은 이론상으론 협상을 간소화하는 방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동맹국들의 신뢰만 훼손시킬 뿐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협력의 규칙이 안정적이란 확신을 줘야 한다. 또 경제적 결정과 무관한 정치 문제로 동맹을 인질로 잡지 않는다는 확신도 줘야 한다. 방위비 분담과 관세를 연계시키면 동맹 관계에 대한 잘못된 시그널이 동맹들에 전달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중·장기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통상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관세는 일시적으로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순 있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산업 전략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인력 개발, 혁신 생태계, 회복력 있는 공급망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해답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보여 줘야 할 비전이나 리더십은 뭔가.

“미국은 예측 가능성, 동맹과의 파트너십, 미래 지향적 비전으로 세계를 이끌 수 있다. 고립과 일방주의를 고집하면 안 된다. 한국 등 동맹들은 미국이 무엇을 하느냐는 물론이고 어떻게 하느냐까지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협상의 카드가 아닌, 다음 세대 경제 번영을 함께 만들어갈 동반자로 인정받길 원한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리더십은 바로 그것이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미관계는 21세기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 중 하나다. 상호 방위, 깊은 경제적 유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 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양국 관계는 안보를 넘어 글로벌 혁신과 산업 협력의 핵심축으로 진화해 왔다. 또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 분야의 제조 역량 재건 과정에서도 최대 규모의 해외 투자자로서 중요한 역할도 해 왔다. 지정학적·기술적 변화가 가속화되는 현시점에서 한미 동맹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미래의 핵심 자산이다.”

돈 그레이브스 전 미국 상무부 부장관

△윌리엄스대 정치학·조지타운대 로스쿨 졸업
△1997∼1999년 재무부 정책 고문
△2005∼2009년 ‘그레이브스&호턴 LLC’공동 창립자
△2014∼2016년 대통령 직속 ‘일자리 및 경쟁력 위원회’ 사무국장
△2016년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 수석 고문 및 국내경제정책 디렉터
△2017~2020 ‘키뱅크’ 기업 책임 및 커뮤니티 관계 부사장
△2020년 조 바이든 대선 캠프 수석 고문
△2021년 5월~2025년 1월 상무부 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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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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