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가석학으로 선정된 탄소나노튜브(CNT)의 세계적 권위자 이영희 성균관대 석좌교수가 중국 후베이 공업대에 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을 퇴임한 뒤 연구를 이어갈 곳을 찾지 못하던 이 교수를 최근 중국이 영입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2006년 국가석학인 이론물리학자 이기명 전 고등과학원 부원장이 중국 베이징 수리과학 및 응용연구소(BIMSA)로 자리를 옮겼다.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중국에 인재 공급 기지로 전락한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국가석학 1, 2호를 잇달아 중국에 빼앗긴 데는 기초과학에 대한 열악한 투자와 경직된 규제로 가득한 연구 환경이 있다. 이 교수는 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장을 맡아 반도체 신소재를 연구하며 세계 논문 피인용 횟수 상위 1%에 올랐다. 그런데 규정상 올해 석좌교수 임기가 끝나면 연구단장을 맡을 수 없어 연구를 지속할 수 없게 되자 2023년 IBS를 떠났다. 20여 명의 연구원은 국내외로 뿔뿔이 흩어졌다. 반면 후베이 공업대는 이 교수를 영입하며 1만6000㎡ 규모의 양자 물질 연구소를 지어 모셔갔다. 앞서 중국으로 간 이 전 부원장 역시 정년 퇴임 이후 연구를 계속할 곳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정년 없는 연구·교수직 운영,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 자유로운 연구 환경 등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이공계 교수 사이에선 연봉 외 주거, 교육비까지 포함된 중국 기업과 대학의 연봉표가 돌고 있다고 한다. 특히 각국이 첨단산업 기술 유출만 엄격히 통제하는 틈을 타 중국은 기초과학 인재를 싹쓸이하고 있다. 이 교수와 이 전 부원장도 반도체와 양자 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 분야의 권위자들이다.
매년 3만∼4만 명의 이공계 인재가 한국을 떠나고 있다. 지난해 난데없는 R&D 예산 삭감과 의대 증원 사태는 이공계 기피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이렇게 이공계 인재를 푸대접하다간 기술 패권 경쟁에서 낙오하고 만다. 인재 육성과 유치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중국은 이미 반도체, 전기차, 인공지능(AI) 등 핵심 산업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이공계 인재 유출이 국가 생존과도 직결된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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