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는 권력의 상징 '오지만디아스'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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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4.18 01:20 수정2025.04.18 01:20

오지만디아스
퍼시 비시 셸리

고대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네.
그가 말하길 “거대하지만 몸통 없는 두 다리의
석상을 사막에서 보았네. 근처 모래 위에는
부서진 두상이 반쯤 묻혀 있는데, 찌푸린 얼굴,
주름진 입술과 독선적인 냉소가 감도는 걸 보니
조각가가 그의 열정을 잘 읽었구나 싶었지.
그 열정이 주인을 따르던 손과 심장을 뛰어넘어
생명 없는 돌에 새겨져 여태 살아남았다네.
그리고 받침대 위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
너희 강대한 자들아, 나의 위업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그 옆엔 아무것도 없었네. 뭉툭하게 삭아버린
그 엄청난 잔해의 주위로, 끝이 없고 황량하게
외로운 모래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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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권력의 상징 ‘오지만디아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영국 낭만주의 시인 퍼시 비시 셸리(1792~1822)가 26세 때인 1818년에 발표한 시입니다. 제목의 ‘오지만디아스’는 이집트 람세스 2세의 그리스어식 이름이지요. 영국이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을 이집트로부터 들여온 것을 계기로 쓴 시입니다.

오지만디아스는 고대 이집트의 태양왕으로 불린 파라오였습니다. 선대의 투탕카멘, 후대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제왕입니다. 26세에 즉위해 64년간 제국을 통치하다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시리아와 리비아 등을 정복했고,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거대한 조각상과 아부심벨, 라메세움 등의 신전을 곳곳에 건립했습니다. 수많은 전승기념비도 세웠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권력과 영화도 세월과 함께 덧없이 스러지고 말았지요.

셸리가 이 시를 쓰던 무렵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갇혀 있던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폴레옹은 한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람세스 2세의 거상을 프랑스로 가져오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셸리는 오지만디아스 거상의 받침대에 새겨진 문구를 통해 권력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습니다.

3000년 전의 절대 권력자 오지만디아스가 역사 속의 수많은 ‘강대한 자들’에게 자기의 위업을 보고 절망하라고 외쳤지만, 그는 사막 한복판에 버려진 채 머리가 부서진 석상 신세로 누워있습니다. 남아있는 것은 그의 찌푸린 얼굴과 오만한 표정을 담아낸 조각가의 기술뿐이지요.

아무리 강한 권력자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고 결국은 사막의 잔해처럼 잊히게 됩니다. 오지만디아스 역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익명의 조각가보다 못했고, 거만한 문구로만 남은 비극적 운명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는 셸리가 친구 호레이스 스미스와 같은 주제로 시 쓰기 경쟁을 하면서 썼다고 합니다. 스미스가 같은 제목으로 시를 발표했다가 나중에 제목을 바꾸었다니, 셸리의 작품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시는 지금도 영미 명시 선집에 꼭 포함됩니다.

셸리는 조지 고든 바이런, 존 키츠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2세대 낭만주의 3대 시인으로 불립니다. 그런 그도 29세에 이탈리아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우에 휩쓸려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고대의 나라에서 온 여행자를’를 통해 들려준 오지만디아스 이야기는 2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 줍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잔해의 주위로, 끝이 없고 황량하게/ 외로운 모래벌판이 멀리까지 뻗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허황한 꿈을 좇는 권력 중독자들의 표정은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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