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어진 정치 갈등… 국민 ‘정신 방역시스템’ 필요하다[기고/한창수]

2 days ago 5

한창수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한창수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한창수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선거가 끝났음에도 갈등의 골은 여전히 깊다. 광장에서, 뉴스에서, 심지어 식탁 위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모든 국민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정서적 피로와 긴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견해 차원을 넘어 국민 정신건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정치적 피로감은 단기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군부 정권의 억압, 민주화 이후의 급속한 변화, 반복되는 정치 추문과 사회적 갈등은 오랜 시간에 걸쳐 국민의 심리적 자산을 점차 소진해 왔다. 정치 뉴스에 몰입한 나머지 정작 자신의 감정을 돌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뉴스를 끄면 허탈감이 밀려오고, 댓글을 보면 분노가 치밀며, 소셜미디어에서는 서로를 적대시하는 감정이 증폭되고 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정치 중독’의 양상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몰입이 개인의 정신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기능마저 저하한다는 점이다. 분열된 사회는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확증 편향은 강화되며, 결국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구조로 고착된다. ‘정치 지도자가 바뀌면 내 삶도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다.

고대의 메시아 신앙이나 종교·정치 지도자에 대한 강한 기대 역시 이런 심리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역사는 늘 우리의 기대대로 흘러가지는 않았고 우리 삶의 많은 문제는 결국 각자의 노력과 실천으로 해결해야 할 몫이다. 정치적 변화에만 기대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의 마음을 돌보고 일상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대응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치적 중립’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훈련,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공감 능력 등 자신을 돌보는 ‘심리 면역’이 절실하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정신 방역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은 지금 가장 큰 무기력과 불안을 겪고 있다. 경제적 불안, 취업난, 사회적 고립은 그들을 절망으로 이끌고 있다. 단순한 위로나 공허한 메시지가 아니라 실질적인 심리 지원과 사회적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 청년들의 정신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중대한 사회적 과제다.

건강한 공동체란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정치적 의견이 달라도 우리는 같은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고, 같은 병원을 이용하며, 같은 버스를 타고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의 삶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이 연결을 회복하는 첫걸음은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보듬는 일이다. 지금은 서로를 공격할 때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마음을 돌아봐야 할 때다. 타인을 탓하고 비난하는 것은 실질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리학적으로도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하나로 꼽힌다. 이제는 분열을 넘어 회복으로, 정쟁이 아닌 마음의 통합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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