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파면됐다. 이날 오전 11시 22분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서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부터 이날 파면 결정까지 123일이 걸렸다. 비상계엄 선포 뒤 불과 2시간40분 이어진 ‘서울의 밤’ 동안 긴급 소집된 국회가 군인으로 구성된 ‘체포조’의 국회의사당 진입에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을 상정해 이를 통과시켰다. 이후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와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도 있었다. 비상계엄부터 윤 전 대통령 파면에 이르기까지 주요 장면을 돌아본다.
1. 한밤의 계엄 선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킬 것”이라며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6분간 이어진 담화는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2. 계엄군 국회 진입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경찰은 3일 오후 10시 48분부터 국회 외곽 출입문을 폐쇄하고 국회의원과 보좌진, 직원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강한 항의가 이어지자, 경찰은 오후 11시 6분부터 11시 37분까지 출입증을 지닌 사람에 한해 출입을 일시 허용했다. 이 틈을 타 다수의 의원들이 국회로 진입했다.
이어 군은 오후 11시 48분께 국회 경내에 진입했다. 707특수임무단 대원 27명을 태운 블랙 호크 UH-60 헬기 3대가 국회의사당 본청 뒤편 운동장에 착륙했고, 이후 헬기는 총 24차례에 걸쳐 다음 날 오전 1시 15분까지 병력 약 230명을 국회로 수송했다.
투입된 병력은 오후 11시 50분께 국회 본청 후문 진입을 시도했지만, 대기 중이던 국회 방호처 직원들과 더불어민주당 보좌진의 저지에 부닥쳐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어 11시 55분께 병력은 국회 정문으로 이동해 다시 진입을 시도하지만, 보좌진과 방호처 직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가로막혔다.
다음 날 오전 0시 33분 정문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계엄군 707특임단 대원 16명이 국회 본청 북쪽,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이 위치한 사무실 창문을 깨고 국회 본청 안 진입에 성공하기도 했다.
3. 국회, 2시간 38분 만에 계엄 해제
의원들의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에서도 당시 긴박했던 분위기가 전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3일 오후 10시 39분, 단체대화방에 ‘국회로’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던졌다.
출입문 통제로 인해 국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의원들은 국회 외곽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시민들 응원과 도움을 받아 의원들이 담을 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한 중진 의원은 “국회를 빙 둘러가며 넘어갈 수 있을 만한 낮은 담을 찾고 있는데, 옆에 있는 시민이 날 알아봤다”며 “어깨를 밟고 국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줬다”고 회상했다.
같은 시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같은 날 오후 10시 49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입니다. 국민과 함께 막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이 “국회가 봉쇄되어 들어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국회가 아닌 국민의힘 당사로 향하는 인원도 생겼다.
이어 같은 날 오후 11시 24분 한 전 대표가 “즉시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유하며 일부 의원들이 다시 국회로 이동했다. 국회는 그날 자정을 넘겨 다음 날인 4일 12시 49분 본회의를 열었다. 1시 1분 본회의에 상정된 ‘비상계엄 해제 요구결의안’은 재석의원 190명 중 찬성 190명으로 통과됐다. 비상계엄 선포 2시간38분 만이었다.
4. 응원봉으로, 태극기로…반으로 갈라진 민심
12·3 비상계엄 이후 국회 앞으로 모인 시민들 목소리는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끌어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자 탄핵 찬반 세력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 앞으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이어나갔다. 탄핵 찬성 측은 한남초등학교 인근에서, 탄핵 반대 측은 북한남삼거리 인근에서 서로 마주 보고 각각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를 외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윤 전 대통령 체포영장 1차 집행 시도가 불발된 다음 날인 1월 4일 한남동에서는 맞불 집회가 열리며 긴장감이 고조됐다.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체포를 촉구했고, 이에 맞서 탄핵을 반대하는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공수처의 영장 집행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집회를 이어나갔다.
이날 집회에서는 시위 참가자와 경찰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탄핵 찬성 측 민주노총이 대통령 관저 쪽으로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이 이를 막아섰고, 일부 지지자가 경찰에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탄핵 반대 측 보수단체에서도 다수가 집결해 윤 전 대통령 체포를 촉구하는 지지자들을 향해 야유와 욕설을 쏟아내는 등 현장에서는 날카로운 분위기가 흘렀다.
연일 집회가 열리며 한남동 인근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한남동 일대의 교통이 마비됐고, 경찰 통제로 인해 도보 통행이 제한됐다. 시위에 참석한 인파로 인해 시내버스가 우회 운행하거나 한강진역에서 열차가 무정차 통과되는 일도 있었다.
5.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한남동 극한 대치
윤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으로서 체포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편 대통령 내란죄 수사와 구속영장 발부, 체포를 주도한 공수처의 수사 과정에서 논란도 계속해서 불거지기도 했다.
공수처는 1월 3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지만, 경호처와 5시간 동안 대치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빈손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공수처와 경찰은 12일 만인 15일 경비 인력을 보강해 2차 체포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관저 안에 인간띠와 차벽을 세우고, 지지자들은 관저 앞을 막아서는 등 경찰과의 대치를 계속 이어나갔지만 결국 체포명령에 응한 윤 전 대통령은 이날부터 서울구치소에 52일간 수감됐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구속으로 인해 한국 민주주의에는 또 하나의 균열이 생겼다. 윤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실질심사 날 벌어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다. 서부지법이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영장 쇼핑’이라며 반발했다. 이들은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이뤄지던 당일 아침부터 서부지법 인근을 가득 메우며 온종일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오전 3시께 서부지법 안으로 침입한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법원 내·외부 시설물을 파괴하고, 경찰에게도 폭력을 행사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피의자 대부분은 법원이 침입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공수처의 잘못된 수사에 저항하기 위한 행위였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질서를 훼손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은 이 사태에 대한 사법절차는 현재 진행 중이다.
6. 헌법재판소 변론 尹 8차례 출
윤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현직 대통령이기도 하다. 매번 붉은 넥타이를 매고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1월 21일 3차 변론기일부터 최후 변론기일까지의 탄핵심판 중 총 8차례 헌재에 출석해 자리를 지켰다. 탄핵심판에서는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 ▲계엄 포고령의 위헌성 ▲국회 장악 및 국회의원 체포 시도 ▲중앙선관위원회 장악 시도 ▲법조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시도 등 다섯 가지 쟁점이 주로 다뤄지며 청구인 국회 측과 피청구인 윤 전 대통령 측이 증인신문 등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렸다.
윤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하는 날이면 안국역 일대 역시 ‘탄핵 반대’의 목소리로 들썩거렸다.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변론기일이 열리는 날이면 아침 일찍 헌법재판소 인근에 모여 시위에 나섰다.
총 11차에 달하는 변론기일 동안 비상계엄과 관련 있는 증인 16명이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증언했다. 법정에 앉은 윤 전 대통령은 주로 눈을 감고 듣는 모습이었지만, 자신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본인 입장을 소명했다. 거대 야당의 예산 폭거와 줄탄핵에 따른 국가비상사태였음을 강조하는 등 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주장했다. 5차 변론기일에는 “마치 ‘호수 위에 뜬 달 그림자’를 쫓는 것 같다”고 말하며 답답함을 표하기도 했다.
최후 변론에서는 67분간 발언하면서 마지막으로 국민에 대한 미안함과 본인의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최후 변론에서 탄핵심판이 기각 혹은 각하돼 직무에 복귀하면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7. 윤석열 체포 52일 만에 석
1월 15일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 산정 관련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체포 52일 만인 3월 8일 석방돼 한남동 관저로 돌아왔다. 윤 전 대통령은 주먹을 불끈 쥐고 지지자들에게 미소를 보이며 인사했고, 지지자들은 열렬한 환호로 대통령을 맞이했다.
서울중앙지법은 구속기한 만료, 공수처 수사 절차 등의 위법성 등을 이유로 윤 전 대통령 측에서 낸 구속취소 청구를 3월 7일 인용했다.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이 실제 시간으로 계산돼야 하며, 공수처의 수사 범위에 내란죄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석방이 결정되자 하나둘 한남동 관저 인근으로 모여든 지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대통령의 복귀를 맞을 준비에 나섰다. 집회에 모인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석방까지 연신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대통령의 빠른 복귀를 한마음으로 바랐다.
반면 탄핵 촉구 측 반발도 이어졌다. 탄핵 촉구 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를 규탄하며 탄핵 찬성을 더욱 거세게 주장했다.
3월 8일 대검찰청이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하며 오후 6시께 윤 전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하자 일대는 축제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윤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해 한남동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에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지는 않았지만 지지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주먹을 불끈 쥐거나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관저로 복귀했다.
윤 전 대통령은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불법을 바로잡아준 중앙지법 재판부의 용기와 결단에 감사한다”며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국민, 그리고 우리 미래세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8.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윤석열 파면”
윤석열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4월 4일 오전 11시 22분에 파면됐다. 국회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8인의 헌법재판관이 전원일치 의견으로 이를 인용하면서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때로부터는 122일 만,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이후로는 111일만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한다”는 탄핵심판 선고 주문을 읽었다. 선고 주문을 읽음과 동시에 파면의 효력은 즉시 발생했고, 윤 전 대통령 신분은 현직에서 전직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헌재는 선고를 통해 “피청구인인 윤 대통령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 등 헌법기관을 훼손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 헌법 수호의 의무를 저버렸다”며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했다.
이어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며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했다.
이날 오후 윤 전 대통령은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