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재정난에도… 등록금 인상 한도 더 낮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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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학기부터 대학 등록금은 직전 3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2배까지만 올리도록 제한된다. 올해 등록금 인상 한도는 최근 3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3.66%)의 1.5배인 5.49%였는데, 개정안대로면 4.39%까지 낮아진다.

국회는 23일 본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는 가계의 등록금 부담을 낮추자는 취지다. 하지만 가뜩이나 열악한 대학 재정이 더 나빠져 교육 경쟁력이 추락하고 대학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등록금을 16년 만에 인상한 올해도 연봉 때문에 우수한 교수를 못 데려오는 상황이다. 대학 경쟁력이 더욱 추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으로 지방 거점 국립대에 과감한 투자가 예고된 상황에서 등록금 규제가 사립대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비판도 있다.

“AI 기자재도 못 갖추는 재정난… 대학 경쟁력 더 추락시켜”

등록금 상한선 더 낮춘 법안 통과
“강의실 책걸상도 제때 교체 어려워
첨단 분야 교수 채용은 언감생심… 기업이면 월급 같은데 붙어있겠나”
등록금 상한 해외선 찾기 힘들어… “법정한도라도 올릴수 있게 해달라”

“신입생 모집 열심히 하고 들어온 학생 나가지 않게 상담 자주 하라고 교수들에게 말하면 ‘월급 한 푼 안 올려주면서 압박만 한다’는 불평이 나와요. 기업에서 월급이 매년 같으면 직원이 붙어 있겠습니까.”(지방 한 사립대 총장)

대학 등록금 인상률 기준을 하향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23일 통과되자 대학에서는 ‘대학 경쟁력을 더욱 추락시키는 법안’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은 대학생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서라는 입장이지만, 대학 재정 악화로 우수 교수 채용과 시설 및 연구 환경 낙후, 학생에 대한 비교과 프로그램 저하 등으로 이어져 결국 학생이 피해를 보고 국가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 AI 기자재-첨단 교수 채용은 언감생심

대학들은 이번 개정안이 단순히 등록금 인상 한도를 옥죄는 차원을 넘어 등록금에 대한 대학 자율성을 억압하려는 조치라고 비판한다.2010년부터 등록금 인상률 상한제가 시행됐지만 올해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정부 압박으로 대학의 등록금 인상률은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등록금을 인상하면 국가장학금Ⅱ유형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압박을 하기 때문이다. 학생 모집이 어려워 재정 압박을 받던 26개 대학이 지난해 등록금을 올렸을 때도 전년 대비 평균 인상률은 0.52%(4만 원)에 그쳤다. 당시 직전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은 3.76%였다.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대학 평균 명목 등록금은 682만9000원으로 2011년(692만9000원)보다 감소했다. 소비자 물가 인상률을 반영한 실질 등록금은 2011년 771만2000원에서 지난해 598만1000원으로 22.4% 하락했다.

오랜 등록금 동결로 대학이 노후화된 설비를 개선하지 못하다 보니 학생 불만이 크다. 지방의 한 대학 관계자는 “고등학교에도 화장실 변기에 비데가 있었는데 왜 대학에는 없느냐는 불만도 있다”며 “강의실이나 연구실 에어컨뿐 아니라 책상 의자도 제대로 교체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화장실 휴지가 뻣뻣하다, 기숙사 샤워기 필터를 교체해달라는 민원을 받을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연구를 강화하고 관련 설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대학에서는 너무 낡은 연구 기자재조차 바꾸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첨단 분야 교수 채용에는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서울 주요 대학에서 첨단 분야 교수에게 제시할 수 있는 초봉은 8000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박사급 인재가 국내 기업에 취업하면 2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대학이 채용 공고를 내도 지원자가 오지 않는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컴퓨터공학 분야로 미국 기업에서 일하는 아들을 둔 부부 교수가 있는데 부모 연봉 합친 것보다도 많이 받는다더라”라며 “교수로 최고 두뇌를 유치하지 못하고 투자도 못 하니 대학은 평범한 교양 교습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법정 한도만큼이라도 올리게” 볼멘소리

법 개정을 추진한 여당은 등록금 인상 한도 축소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물가 상승률의 1.2배는 논리적 근거가 있다기보다 청년 부담을 완화하자는 취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해외에선 정부가 대학 등록금 상한선을 정하는 정책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일본은 문부과학성이 국립대 등록금 인상 한도를 두고 있지만, 사립대는 규제가 없다. 국립대에 대해서도 정부가 설정한 표준액에서 20%까지 인상이 허용돼 도쿄대는 올해 신입생 등록금을 10만 엔(약 100만 원) 넘게 인상했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에 목을 매며 눈치를 봐 온 대학에서는 이날 “법정 한도만큼이라도 올리게 해주면 고맙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2020년 기준 정부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비율은 43.3%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67.1%)에 한참 못 미친다. 서울의 한 교육학과 교수는 “국내 대학은 정부 지원이 OECD 국가 중 매우 낮아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데 현 상황에서는 발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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